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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0호] 2017년 10월 31일 (화) 16:55:38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bumcom@daum.net

KBS본부 ‘파친소’에 오형일 조합원

계약직으로 해고 후 겪은 경험 전해

KBS MBC 파업 집회 중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뭘까? 본부장 발언, 어제 투쟁 현장 동영상, 연대지지 발언, 투쟁 기금 전달, 노래패의 공연. 조합원들에게 인기와 관심 그리고 주목까지 받는 프로그램은 동지들을 소개하는 코너다.

31일 KBS본부 파업 집회 중 ‘파업 친구를 소개합니다’(파친소)에 나온 오형일 조합원은 KBS에서 일해 온 자신의 삶을 말한 뒤 진정한 승리의 의미를 전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오형일 조합원은 2005년 연봉 계약직으로 입사했다고 계약해지를 당했고, 투쟁 끝에 재입사해2017년 KBS본부에 가입했다. 지난 10년간 KBS 프로그램을 분석했고, 현재 편성전략부에서 일하고 있다.

오형일 조합원은 2005년 연봉 계약직 입사했다가 2009년 7월 비정규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계약 갱신이 되지 않아 해고됐다. 당시 계약직 노동자들은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를 만들어 투쟁을 벌였고, 2년여 간의 투쟁 끝에 순차적으로 복직하게 됐다.
 

   
 

오형일 조합원은 해고 기간 중에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의 연대가 무언인지, 타인에 대한 환대가 무엇인지 느꼈다”고 전했다.

현재 KBS 파업과 관련 오 조합원은 “우리 안에 동료 의식과 선한 손짓과 포옹의 목소리를 느끼는 시간”이라며 “그래서 이 싸움은 고대영 퇴진을 넘어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분향소에서 유가족으로부터 들은 “나는, 당신은, 우리는 쓰레기입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겠다고 말한 뒤 KBS본부 파업 승리의 진정한 의미를 전했다.

“이 파업이 새노조만의 승리로 끝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쓰레기일 겁니다. 이 승리가 새노조를 넘어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참여할 수 없는 주변 동료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게도 거리에서 핍박박고 아파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승리는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깁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때부터 정말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 때 민주광장을 넘어, 우리 사무실 안에, 우리 채널 속에, 우리 프로그램 속에 환대와 연대와 우애의 정신이 넓고 깊게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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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오형일 조합원의 글 전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편성심의구역에 오형일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집회에 오면 가장 재미있게 기다리는 코너 중 하나가 파친소입니다. 우리 회사에 이런 동료들이 있구나, 이런 사연들이 있었구나, 파친소가 아니였다면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를 동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은 제게는 적지 않은 자극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이 자리가 부담스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합니다.

어제 밤에 연락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좀 고민했는데요, 재미는 없지만 KBS 노동조합과 얽힌 제 지난 10년의 기억들을 꺼내보려 합니다. 저는 2005년도에 입사했습니다. 입사하면 당연히 노조원이 되는 줄 알았는 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연봉계약직은 노조원이 될 수 없다는 거였어요. 비정규직은 노동자가 아니다? 동료가 아니다? 좀 이상했어요.

이 구분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별로 게의치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시절의 전 제가 무지 예쁘고 똑똑하고 잘났다고 착각했거든요. 배우는 일도 재미있었고, 만나는 선배들도 좋았어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났는데 무슨 노동조합이야? 일도 재미있고 주변의 선배들도 좋은데 비정규직이라는 명찰 따위야 무슨 상관이야?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좀 건방졌고, 주변 선배들도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우쭈우쭈 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분위기가 바뀐 건 모두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에게도 2008년, 2009년 즈음이었어요.

공영방송에 대한 정권의 탄압으로 많은 선배, 동료, 후배들이 상처를 입었고, 제가 몸담고 있던 편성은 몹쓸 짓을 하는 공간으로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노동유연화, 경영효율화. 늘 그런 상투적인 단어는 현장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타겟으로 하기 마련인데요. 당시 KBS에서 타겟이 된 1번 타자가 외부 MC, 프리랜서 작가였고 2번 타자가 연봉계약직이었습니다. 처음 해고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에이 설마’ 그랬어요.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계약종료통지서가 전해진 거예요. 맨홀에 빠진 느낌이었어요.

“내가 왜? 내가 왜?”

그때 처음으로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조에 가입했어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맨홀에 빠진 백여 명과 함께 언론노조 산하에 KBS 계약직지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KBS 정규직 노조, 솔직히 원망 많이 했습니다.

“저희도 동료잖아요. 저희도 후배잖아요.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고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보고만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당신들이 어떻게 국민의 방송이라 떠드는 거예요?”

소리 없는 메아리였습니다. 그게 대한민국이었고, 그게 KBS였고, 그게 저였고, 그게 우리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해고는 제게 기막힌 선물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응원해주고 와락 껴안아주는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이들은 대부분 허름한 옷을 입고, 낡은 피켓을 들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유인물을 나눠주고, 아무도 보지 않는 피켓을 들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거리에는, 자본과 권력에 주눅 든 사람들, 난타당한 사람들,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정말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들 옆에는 이야기 들어주고, 안아주고, 함께 웃고 울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정말 정말 많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전 그때서야 어렴풋하게 사람과 사람의 연대가 무엇인지, 타인에 대한 환대가 무엇인지 조금은 느꼈던 것 같습니다.

2010년 복직을 하고 계약직지부가 KBS 노조에 통합되면서 저는 지난 6년 동안 구노조 조합원이었습니다. 왜 새노조가 아니라 구노조였냐, 백만 가지 할 말이 있지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KBS 노조에서 어떤 연대감이라든지, 환대의 정서를 느끼지 못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른들의 정치만 있고, 계산기만 두드릴 뿐, 사람 냄새가 없었어요. 이게 꼭 구노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우리 KBS에 넓게 퍼진 정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 “기계적 균형”, “형평성” “선례” 이런 말인데요. 복직 후 노조 안팎에서, KBS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단어는 사실 내 스스로 진실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 찾을 수 없을 때, 그만큼 현장과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할 때, 그 무능력을 숨기는 변명, 수사라 생각합니다. 그 무능력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늘 그 공동체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그 위치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죠. 이건 제가 구노조를 건강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했어요. 물론 KBS에서 이게 구노조만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공간에 더 있어야 하는 이유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번 여름에 새 노조로 옮긴 것은 좀 여우같은 짓이기도 했어요. 시대가 변했고 거기에 편승하자. 변화의 흐름을 잘 탈 곳이 어디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새 노조밖에 없더라구요. 그래도 워낙 천성이 게을러 뮝기적거리다 어느 날 아침에 성재호 위원장이 보낸 진심어린 편지를 읽었어요. 저도 모르게 가입 원서를 출력했고 뻘쭘하게 새 노조 사무실을 찾아갔어요.

파업 직전이라 모두들 너무 정신없이 바쁜 날이었어요.

“저 가입하러 왔는데요.”

갑자기 분주했던 사무실이 일순 조용해지더니 너무도 격하게 환영해주는 거예요. 아 정말 부끄러웠어요. 마치 친구 따라 교회 갔더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노래를 듣고 나온 느낌? 그런데 그 느낌이 좋았어요. 오랜만에 KBS에서 환대, 연대의 기운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파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기운도 비슷한 겁니다. 우리 안에 동료의식이라는 게 있는 거였구나, 내 안에, 우리 안에 이런 선한 손짓과 포옹과 목소리가 있는 거였구나. 이런 걸 느끼는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고대영 퇴진을 넘어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이것 하나는 꼭 잊지 않으려 합니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쓰레기입니다.”

안산 세월호 분향소를 갔을 때 유가족에게 들었던 이야기죠.

이 파업이 새노조만의 승리로 끝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쓰레기일 겁니다. 이 승리가 새노조를 넘어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참여할 수 없는 주변 동료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게도 거리에서 핍박박고 아파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승리는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깁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때부터 정말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 때 민주광장을 넘어, 우리 사무실 안에, 우리 채널 속에, 우리 프로그램 속에 환대와 연대와 우애의 정신이 넓고 깊게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열심히 공부하고 성찰하고 비판하면서 작은 힘 보태겠습니다.

당신들의 친구라는 게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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