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언론에서 남발하는 ‘세금 낭비’ 프레임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잘못된 국가 정책을 바로잡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세금 낭비’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지적입니다. 그런데 혹시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사용한 문제,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세금 도둑’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적이 보셨습니까?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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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때나 ‘국민세금’ 운운, 팩트를 따져라

구상권 청구 취하에 보수언론이 흥분하는 이유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12월 12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및 단체 등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권 청구 소송을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수용해 취하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해군이 시민들의 반대시위로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지연돼 손해를 봤다며 주민 116명과 5개 시민단체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했다. 청구액이 약 34억 원이나 된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의 대선공약에 담길 정도로 구상권 철회는 대통령선거 공약이라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 보수우익정당만이 아니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만이 아니라 세계일보 등 보수언론이 총 출동해 ‘강정마을 불법시위 면책’, ‘불법시위꾼이 낼 돈 세금으로 메운다’며 입을 모아 비판했다. 심지어 유승민은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구상권 청구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우려”했다.1)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제껏 국책 사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전례는 없었다”며 “서로 밀접한 협조와 유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기대했던 군사·경제적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고 했다. 강정해군기지의 문제점, 미국의 동북아전략을 위해 만들어진 점은 수긍하는 뉘앙스라 아쉽지만 손배청구의 문제점을 짚었다. 한겨레도 사설에서 짚었듯이 “애초 해군기지 유치 결정과 이후 과정은 모두 주민 뜻과 관계없는 날림과 날치기의 연속이었다.”
 

 

 

불법 시위? 인권침해!

그렇다면 보수언론이 말한 불법시위의 실체는 무엇인가. 강정해군기지에 반대한 사람들 누구도 폭력을 사용한 적이 없다. 게다가 어떠한 폭력도 없었던 평화행동이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재단해 불법으로 만들어버린 게 경찰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평화적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현실에서 작동한 헌법적 기본권이다. 그걸 불법으로 간주한 경찰과 해군, 검찰과 법원의 문제다.

그래서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유엔 인권옹호자특별보고관은 이를 분명하게 짚었다. 그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인권옹호자들은 종종 ‘업무 방해’로 고발되고, 막대한 손해배상과 민사 소송을 통한 일시적 재산 압류에 처해진” 현실을 우려했다. 2017년에 열린 유엔사회권위원회에서도 정부나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따라서 이번 강정해군기지 구상권 철회는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를 이제야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 때나 세금 운운?

복지정책을 펴거나 국가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예산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나오는 것이 ‘세금’ 논란이다. 참사가 일어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마저 보수언론은 세금도둑이라고 낙인찍는다. 그러나 국가가 책임져야할 부분이 있다면 그냥 말로 떼울 수 없는 게 아닌가. 당연히 예산이 들어간다. 문제는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세금(예산)을 쓰는가를 봐야 하는데 비판하기 애매할 때 세금 운운하는 식이다. 그러고는 정작 세금도둑에게는 국민의 혈세를 남용했다는 비판을 하지 않는 언론. 이것도 일종의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에 딸려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실제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제 돈 쓰듯이 했고, 심지어 그걸 대통령 측근에게 상납했음에도 보수언론은 세금도둑이라거나 혈세 낭비라는 프레임을 쓰지 않는다. 그저 뇌물로 상납한 정도만 부각한다. 국민 세금으로 뇌물 줬다는 건 언급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정원 특활비가 2013년 4671억8000만원에서 2014년 4712억 원, 2015년엔 4800억 원, 2016년에는 4860억 원으로 해마다 40억에서 80억이나 늘어났다. 그 중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상납 금액만 총 70억 원이다. 노골적인 세금도둑이다.

이명박 정권은 또 어떠했나. 국민들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으로 22조나 썼지만 녹조라떼가 돼 생태계가 파괴됐다. 4대강 사업은 2008년 12월 29일 낙동강지구 착공식을 시작으로 2012년 4월 22일까지 쓰고도 부실공사로 해마다 몇 천 억이 쓰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가디언>지가 뽑은 돈만 먹는 애물단지를 뜻하는 ‘흰 코끼리(white elephant)’ 건축물·시설 10개에 4대강이 포함됐다. 세계적 망신을 사고 있다. 4대강 세금도둑에는 침묵하는 언론.
 

잘못된 국가정책 바로잡는데 세금이 쓰여야

한겨레에서도 짚었듯이 유치과정에서부터 비민주적이고 불법을 행사한 잘못된 국가정책사업이 강정해군기지 건설이다. 정당한 항의행동에 구상권을 청구한 것은 정부의 잘못된 권력행사다. 국가권력을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돈이 든다고 잘못된 정책을 계속 밀고 가는 것이 나쁜가, 잘못됐으니 돈이 들더라도 고치는 일이 나쁜가. 문재인 정부가 4대강 보철거와 수문개방으로 정책을 바꾼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이대로 4대강을 두면 물은 더 썩어가고 국민들의 건강은 더 나빠질 것이다. 강정해군기지, 사드, 고압 송전탑 모두 잘못된 국가정책으로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지역이다. 단지 구상권 철회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국책사업의 기조를 전면 바꿔야 한다.
 

 

 

 

그런데도 적반하장격으로 구상권 철회 정도를 놓고 면책이니 세금낭비니 보수언론이 흥분하는 건 잘못된 국가정책을 더 이상 바꾸지 말라는 주문이자 압박이다. 정부는 보수언론의 주문을 들을 것인가. 평화롭게 살고 싶은 국민의 주문을 들을 것인가. 그들은 문재인정부가 촛불정부로 남아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자유롭게 외치는 게 싫은 것이다. 적당히 외피만 바뀌는 정권을 원한다. 워낙 박근혜 정권이 엉망으로 만들어 비상식적으로 돌아갔기에 그것만 손보면 된다는 식이다. 지금도 온존하고 있는 불평등의 구조와 권력독점을 쭉 이어가고 싶어서다. 그러나 촛불항쟁의 정신을 놔버리면 과거 정부와 다를 게 없어지고 국민들의 지지도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보수언론의 여론몰이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흥분하는 보수언론에게 묻는다. 세금은 어디에 써야하는지, 누굴 위해 써야하는지 답하라. 왜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쓰는 세금은 문제 삼지 않고 국민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쓰는 돈만 ‘세금 낭비’라고 하는지, 그 속내가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보수언론의 씌운 낡은 프레임과 잣대를 문제 삼고 깨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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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 12월13일 관련 주요 사설들

[경향신문 사설] 정부의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는 당연한 조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122050015&code=990101

2016년 2월 해군기지가 완공된 다음달 해군은 강정마을 주민 등 개인과 단체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구상권) 청구소송까지 내 이들의 고통을 배가시켰다. 이제껏 국책사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전례는 없었다. 정부가 하는 일에 함부로 반대하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이기 위한 소송이란 비판이 뒤따랐다.

 

[한겨레 사설]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 ‘10년 갈등’ 풀 첫단추 되길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823221.html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불법시위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정부를 강력 비난한다. 지난 10년간 갈등의 역사에 완전히 눈감은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애초 해군기지 유치 결정과 이후 과정은 모두 주민 뜻과 관계없는 날림과 날치기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주민 등 500여명이 사법처리를 받고, 수백년 내려온 마을공동체가 붕괴됐다. 공사지연 책임을 전적으로 주민에게 돌리는 논리도 문제가 있다.

 

[조선일보 사설] 큰 걱정 던 제주기지 방해 전문 시위꾼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2/2017121203292.html

강정마을 시위자 상당수는 외부 전문 시위꾼이었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손해배상과 구상권 청구다. 정부의 구상권 포기로 전문 시위꾼들은 큰 걱정을 덜었다. 그만큼 일반 시민의 걱정은 늘었다. 100명이 하는 사드 반대 시위를 경찰 1600명이 못 막고 쩔쩔매는 일이 일상화할 것이다. 이것이 법질서를 지킨다며 적폐 수사를 하는 정부의 법에 대한 자세다.

 

[중앙일보 사설] 제주 해군기지 불법 시위에 면죄부 … 법치주의 포기다

http://news.joins.com/article/22199239

대한민국 국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국가관이 없고 불법 시위를 일삼은 이들에게 정부가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상생과 화합을 위한 대승적 차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번 결정은 정부 스스로 법을 무력화시킨 셈이다. 이래서야 법치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나쁜 선례로 인해 앞으로 제주 해군기지와 같은 국가 사업을 방해하는 불법 시위에 대해 책임조차 묻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면제해 준 구상금은 국민의 혈세다.

 

[세계일보 사설] 반미 불법 시위에 면죄부 준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

http://www.segye.com/newsView/20171212004687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는 애초 소송을 철회하는 대가로 시민단체 측에 불법 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등을 받기로 내부 방침을 정해놓고도 이런 내용을 이번 강제 조정안에 전혀 담지 못했다. 반미 불법 시위꾼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길을 터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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