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 언론연대 활동가가 최근 JTBC뉴스룸 손석희 앵커와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에 대한 글, <JTBC 손석희 앵커는 굳이 '틀려먹은' 질문을 했어야 했나> 를 보내왔습니다. 미투 운동의 확산, 세기의 인터뷰라는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들려오지만, 과연 우리 언론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이 인터뷰는 이후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이 됐을까요?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JTBC 손석희 앵커는 굳이 ‘틀려먹은’ 질문을 했어야 했나

- 미투운동, 언론만 준비가 안 돼 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서지현 검사는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성폭력이 결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 8년. 그는 긴 시간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라는 자책감과 괴로움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냈다. “범죄 피해자분들께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JTBC <뉴스룸>이었기에, 손석희 앵커였기에 가능했던 인터뷰였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서지현 검사가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었던 셈이다.

JTBC <뉴스룸>이 검찰 내부 통신망에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서지현 검사를 직접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한 것 그 자체는 박수를 보낼만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인터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JTBC 손석희 앵커의 질문은 잘못됐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신고 할 때 처음으로 좌절감을 들게 하는 곳은 경찰서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2차 가해들 때문이다. ‘빌미를 준 건 아니고?’,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어?’라는 무수한 폭력적 질문이 던져지는 곳. 상상조차 하기 싫은 피해 사실을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또 얘기하도록 만드는 곳. 그 힘든 절차를 다 밟아야만 비로소 가해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는 곳. 그런 무수한 비판들이 모여 전담팀 필요성이 제기돼 왔던 것이다. 이렇듯 ‘피해자 중심’이라는 기초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 성폭력 범죄다.

 

JTBC <뉴스룸> 서지현 검사 인터뷰 또한 ‘피해자 중심’ 원칙에 맞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아쉽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2010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입으로 피해 당시의 상황을 묘사해야하는 질문. 손석희 앵커 역시 “사실 저도 드리기 싫은 질문”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그 질문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을 묘사를 하면서 당시의 공포를 다시 느끼게 된다.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사실을 반복해 이야기하도록 하는 건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지양해야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지현 검사를 배려했다면,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인터뷰에 앞서 리포트로 전달하는 등의 조치들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진술이 가능하겠습니까?’라는 짧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질문을 던질 수도 있었다. 그로 하여금, 진술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피해자에게 주는 게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사전에 서지현 검사로부터 직접 진술하겠다는 의사가 전달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피해사실을 직접 들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지현 검사가 장례식장에서 직접 당한 성폭력 사건을 털어 놓을 때에는 소스라칠 질문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물론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겠죠?”라는 질문. 이건 완벽하게 잘못된 질문이다. 8년 동안 ‘나의 잘못일 수 있다’는 고통을 겪어온 피해자에게 결코 던지면 절대 안 되는 물음이었다. 그 같은 질문이야말로 ‘왜 저항하지 않았어?’, ‘그건 니 잘못이기도 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 피해자들이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 ‘피해자의 저항 여부’가 기준이 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런 이야기들로 인해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짧게 입고 다니니까’,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밤늦게 다니래’, ‘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셔서’라는 지긋지긋한 꼬리표들. JTBC에서 나온 질문은 앞의 꼬리표들과 어떤 부분에서 다른가.

JTBC 손석희 앵커의 ‘혹시 이 건에 대해서 사과를 받고 그냥 조용히 끝내겠다는 생각을 하셨습니까?’라는 질문 역시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과 받고 끝내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질문자의 가치판단이 포함된 질문이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받은 상처의 크기에 따라 그 피해의 크기가 달라지는 범죄다. 치유과정 또한 피해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가치판단에 따라 피해자의 행위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마지막 질문도 그랬다. “그나저나 검찰에서 있기가 어려우시겠네요?”라는 질문은 손석희 앵커도 인정했듯 “틀려먹은 질문”이다. 서지현 검사는 당연히 검찰 내에 있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 검찰 내부의 개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한 조직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떠나는 건 이제 끝내야 한다. JTBC가 굳이 “틀려먹은 질문”을 던질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오히려 검찰에 남도록 힘이 되어주는 질문이 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미투운동 확산?…준비가 안 된 쪽은 언론

서지현 검사는 용기를 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검찰은)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 둘째, 가해자에게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 그리고 셋째,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두고 미투 운동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 효과는 클 것이라고 예측된다. 성폭력 피해자들로 하여금 ‘성폭력은 나만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폭력은 사회의 한 권력자인 검사들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상적인 범죄라는 게 드러난 측면이 중요하다.

하지만 경계해야할 부분도 있다. 우리 언론은 이미 한번 실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여배우 A씨가 영화 촬영 도중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이후 언론에 의해 변질·왜곡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조덕제 씨는 “억울하다”고 호소했고, 동료 연예인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맞장구쳤다. 그리고 언론들은 가해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디스패치는 메이킹필름을 입수했다며 ‘영상분석’이라는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조덕제 씨가)여자의 음모를 만지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피해자는 디스패치가 입수한 영상이 원본이 아니라고 호소했지만 그 목소리는 차단됐다. 피해자는 그렇게 2차 피해에 노출됐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디스패치에 등장했던 영상공학 박사가 여배우 A씨 측으로부터 받은 메이킹필름과 사건영상 9건에 대한 분석을 한 결과, “조덕제의 행위는 여배우 B씨에 대한 강제 추행 치상 및 폭행으로 판단됨”이라는 상반된 소견서를 법정에 제출했던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여배우A씨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반면, 조덕제 씨는 tvN <막돼먹은 영애씨> 마지막회에 출연했다. 감옥에서 ‘모범수’로 나온 설정으로 등장했다. 조덕제 씨는 해당 드라마에서 “먹고 살려고 독야청청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다사다난하고 공사다망한 지난해는 잊어버리고”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서지현 검사의 말이 떠오른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폭로가 언론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던 최근의 사건이다. 미투운동의 확산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은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이나 주변의 반응은 심상치 않다. 용기를 내 자신의 피해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보다는 JTBC <뉴스룸> 그리고 손석희 앵커에 더 주목하는 모습들이 목격된다. 물론, 필자의 주변인들이 ‘언론’에 종사 혹은 관련돼 있는 이들이 많기도 하지만 뭔가 불편하다. JTBC가 해당 인터뷰하게 된 것 또한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JTBC의 인터뷰가 사람들로 하여금 큰 호응을 받았던 이유도 그런 서지현 검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이 확산됐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용기를 줬기 때문이다. 결코 언론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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