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준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이 삼성 앞에서 작아지는 언론의 모습을 지적하는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촛불이 만든 사회 곳곳의 ‘적폐 청산’ 움직임이 후퇴할 수 있으며, 이제부터 언론이 삼성을 어떻게 보도할지 중요한 타이밍이라고 강조합니다.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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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묵시적 청탁’에 무너지지 않는 저널리즘을 기대하며

 

박장준(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

 

한국 사회에서 ‘삼성’을 경험한 시민이라면 안다. ‘우리 사회의 최대 권력집단은 삼성과 이씨 일가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떤 이들은 예측했다. ‘그럼에도 이재용은 풀려날 것이다.’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이재용과 삼성이 박근혜-최순실 정치권력의 겁박에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준 것이라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뇌물을 줬으나 청탁하지는 않았고, 이 뇌물이 삼성의 경영승계 과정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주범’인 이재용과 삼성은 졸지에 ‘피해자’가 돼 버렸다. 정의를 무시하고, 상식에 미달하고, 상상을 초월한다. 시민들은 물론 외신까지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사실 이런 적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삼성’이라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해왔다. 삼성은 사카린 밀수 사건부터 경영권 승계까지 삼성은 정부와 유착했고, 삼성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업영역에 진출했다.
 

삼성의 성장과정에는 불법과 탈법과 꼼수와 특권이 있었다. 총수일가가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비정상 자본이 ‘재벌’이 되기까지, 이 재벌이 ‘글로벌 자본’으로까지 성장하기까지 청와대로 대표되는 관리자계급의 차고 넘치는 지원이 있었다. 삼성은 보수정치세력의 정치자금 후원자, 관리자계급의 정책파트너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국경제를 넘어 사회 전체를 떠받치는 국민기업’이 됐다.
 

삼성은 자신의 영향력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드러났듯 삼성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정치인과 검찰을 매수했고,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판사들을 대거 영입해왔고, 현직 기자들을 홍보팀으로 불러들였다. 우리 사회 관리자계급을 가장 치밀하게 관리하고, 언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노동조합의 동향을 가장 공격적으로 파악하고 봉쇄하는 집단이 바로 삼성이다.

삼성을 겪었기에 우리는 안다. 삼성 소속의 사업장과 노동자가 그렇게 많은데도 무노조 경영이 가능했던 이유, 차명계좌 같이 경영승계 과정에서의 불법행위가 제대로 바로잡히지 않았던 배경, 반도체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기 어려웠던 사정,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완벽한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정황, 언론이 삼성 총수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비중 있게 보도하는 의도… 바로 삼성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수 십 년 동안 이런 ‘묵시적 청탁’을 해왔다.

문제는 촛불로 시작된 적폐청산이 삼성 앞에서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다. 정경유착을 끊고 재벌에게 사회적 책임을 지게 하는 ‘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단 롯데 등 다른 재벌이 연루된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줄 것이다. 정경유착이라는 국정농단이 정치권력과 기업의 갑을관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한 총수일가의 비정상적인 지배를 없애는 ‘재벌개혁’도 요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삼성을 보라. 재판을 전후로 삼성전자 주식의 액면분할을 결정하고 반도체에 30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하지 않나. 그래서 이재용 집행유예 판결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푸념 수준이 아니다. 판결에 분노하는 시민의 반응에서 ‘위기감’이 감지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언론은 위기의 국면을 어떻게 성찰하고 다룰 것인지가 중요하다. 보수언론은 삼성과 판결내용을 일방적으로 옹호한다. 조선일보는 2월 6일자 사설1)을 통해 이재용과 삼성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재판부를 추켜세웠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사설2)에서 “상당수 국민은 (중략) 특검팀의 기소 내용이 과도하다고 생각해왔다”고 여론을 왜곡했다. 동아일보 사설3)에는 “항소심 판결로 특검의 수사가 무리했다는 것이 입증됐다”는 삼성의 주장이 그대로 실렸다.
 


반면 진보언론에는 재판부 판결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실렸다. 그리고 대다수 언론은 분석과 입장과 주장이 없는 최소한의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공방과 논쟁의 구도와 수준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 앞에 서면 무너져온 저널리즘이 또 다시 반복되는 상황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공론장이 구성되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적폐청산의 범위와 수준이 모두 후퇴할 것이다.
 

삼성은 지금 언론에 ‘묵시적 청탁’을 하고 있다. 언론의 상황이 과거와 같다면, 그래서 언론사 사장과 국장이 앞 다퉈 삼성 임원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인사 청탁을 하고 있다면, 적폐는 더 쌓일 것이다. 이제부터 삼성을 어떻게 보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삼성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안다. 삼성을 바꿔야 사회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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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사설]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2018.2.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5/2018020503015.html

이 사건 본질은 애초부터 강요 내지 공갈에 가깝다는 견해가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이득을 주려고 기업들을 겁박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했다면 보복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그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2심 역시 삼성의 일부 승마지원금을 '뇌물'이라고 판정했다. '거절하기 힘들었다 해도 공무원 부패에 조력(助力)해선 안 된다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며 뇌물죄 유죄를 선고했다. 말은 맞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현 정권에서도 기업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인은 대통령 요구를 거절해도 감옥 가고 거절하지 않아도 감옥에 가야 하나.

2) [중앙일보 사설] 이재용 집유 … 법리와 상식에 따른 사법부 판단 존중해야 (2018.2.6.)

http://news.joins.com/article/22348217

상당수 국민은 절대 권력자인 현직 대통령이 기업 경영자에게 어떤 사람 또는 조직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을 때 기업 측이 이를 거부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 기업인이 대통령을 상대로 경영 현안과 관련된 ‘거래’를 시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팀의 기소 내용이 과도하다고 생각해 왔다.

3) [동아일보 사설]이재용 집유… 특검 여론수사에 法理로 퇴짜놓은 법원 (2018.2.6.)

http://news.donga.com/3/all/20180205/88526018/1

항소심 판결로 특검의 수사가 무리했다는 것이 입증됐다. 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검찰은 강요라고 봤지만 특검이 수사를 이어받아 뇌물로 규정했다. 특검은 유독 삼성이 낸 출연금만 뇌물로 기소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청탁 프레임은 삼성의 소유구조를 조금만 알아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나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등을 이런 가공의 프레임에 끼워 넣었다. 권력자의 요구에 마지못해 돈을 준 기업을 전형적인 뇌물사건의 부패 기업처럼 취급했다. 그렇게 여론몰이를 하면서 한편으로 여론에 끌려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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