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호]미국입장 맹복적 대변
2001-09-26 언론노련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문명충돌로 섣불리 규정핵무기 가능성 점치며대대적 전쟁 몰이테러보도 무엇이 문제인가영화야? 현실이야? 지난 11일 미국 심장부를 강타한 사상초유의 테러참사를 지켜본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일 것이다. 테러발생과 동시에 국내 방송은 모든 정규프로를 중단하고 24시간 긴급보도를 편성했고 신문 또한 전 지면을 할애하며 모든 정보망을 동원 사태의 심각성과 향후 여파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참사를 다루는 우리언론은 쏟아부은 막대한 시간과 지면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선정성 시비, 객관적 시각 확보의 실패, 필요이상의 위기상 조성이라는 적지않은 문제점들을 노출했다. 영화와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리얼한 방송화면과 신문사진들은 사회적 공황상태를 부추겼으며 방송사들이 끊임없이 내보낸 편집화면을 보노라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지상 최고의 볼거리로 둔갑시켜 버린 느낌이다. 이로 인해 한때 인터넷에서는 철 지난 종말론이 급속히 확산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지 취재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긴급재난보도를 실시한 방송의 경우, CNN뉴스를 앵무새처럼 반복했고 이성을 읽고 보복공격을 외치는 미국 언론보도를 전혀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우리 안방에 배달했다. 또한 테러발생직후 우리언론은 유력한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 그리고 테러 비호국가로 아프가니스탄을 지목한 미국 언론보도를 인용, 마녀사냥에 본격 합류했고 미국과 아랍국가와의 악연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미국의 입장만을 맹목적으로 대변했다. 심지어 몇몇 신문은 이번 참사의 발단을 미국의 헤게모니 정책의 부작용이나 이슬람문화와의 외교적 갈등맥락에서 찾지 않고 범 기독교대 회교국가간의 문명충돌로 섣불리 규정짓는 등 중동사태에 대한 전문 지식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테러참사현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가자 우리언론은 이번엔 미국의 이슬람권에 대한 대규모 보복전쟁을 화두로 삼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발생 사흘만에 준전시 태세를 천명한 반면 우리언론은 테러직후 보복공격 임박설 등 가상의 전쟁시나리오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미국보다 앞서 우리언론은 이미 개전을 대리 선포한 꼴이다. 더욱이 미국 현지에서조차 보복전쟁에 대한 신중론이 일고있는 가운데 우리언론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마저 점치며 본격 전쟁몰이에 열을 올렸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반전 목소리가 거세지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공격이 장기화 가능성을 엿보이자, 우리언론은 국내 현안 챙기기를 명분으로 적극적 입장표명의 전쟁보도에서 소극적 관망태도로 급선회하는 전형적인 냄비언론의 이중성도 잊지 않았다. 이번 테러참사에 대한 우리언론의 모양새는 여느 재난보도 때처럼 선정성과 위기감 조장 그리고 `아니면 말고`식의 부풀리기라는 오명을 벗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반복해서 내보낸 충격적인 인간살육 장면은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절규하다 사라진 7,000여명의 생명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케 하기에 충분했다. 전대미문의 이번 참사가 미국의 오만적인 패권주의에 기인됐다면 속보경쟁과 상업성에 길들여진 우리언론의 보도태도는 인류 최악의 비극마저도 한낱 흥미거리로 바꿔놓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성한 국제신문 편집부 기자/ 언론노보 313호(2001.9.26)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