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호]16시간 투쟁 끝에 쟁취한 CBS의 '작은 승리'
2001-12-28 언론노련
16시간 투쟁 끝에 쟁취한 '작은 승리' 14일 새벽 3시, 노조 지도부의 파업지침에 따라 마지막까지 방송국에 남아있던 주조정실 조합원들이 일제히 일손을 멈췄다. 지방에서는 서둘러 상경 길에 나섰고, 서울 지도부는 조직점검을 마쳤다. 265일간의 파업을 마무리짓고 지난 6월26일 업무에 복귀한지 6개월만에 CBS는 또다시 굳건한 대오를 형성하며 총파업에 들어갔다. 오후 2시, 조합원들은 권호경 사장의 3연임 여부가 판가름나는 신라호텔 23층 복도에 집결했다.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CBS를 살려달라고, 이 땅의 빛과 소금으로 남게 해 달라고…" 누군가 비장한 목소리로 통성기도를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에 참여했으며 분위기는 숙연히 가라앉았다. 호텔 측은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회의장을 식당으로 옮겼으나, 여전히 2백여명의 침묵 속의 분노에 휩싸여 이사회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논란 끝에 장소가 CBS 사옥으로 옮겨졌다.오후 5시, 파업대오는 흔들림 없이 CBS로 이동했고, 5층 회의실을 에워쌌다. 조합원들은 성원 부족으로 회의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해 권호경 사장, 표용은 이사장 등의 출입을 저지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과 진정한 민중의 소리를 전하기 위해 잡았던 마이크를 놓았습니다. 누가 우리를 분노케 하며 파업의 외길로 내몰고 있습니까" 다시 기도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저음의 찬송가가 뒤따랐다. 사상 초유의 방송중단 사태가 시시각각 다가오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회의장 속에서는 의견충돌이 빚어졌다. 사장선임을 강행하려는 쪽과 회의를 연기하자는 입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계의 이사진은 패가 갈렸다. 결국 사장선임 안건은 무기 연기하되 나머지 안건만 처리하자는 중재안이 나와 노조의 합의를 거쳐 회의는 마무리됐다. 임기 2개월을 남긴 권호경씨는 여전히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밀실회의 날치기 통과라는 불씨는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날 투쟁은 CBS노조가 배수진을 치고 16시간만에 쟁취한 '작은 승리'였으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CBS정신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줬다는 점에서 결코 작지 않은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 언론노보 319호(2001.12.28)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