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호]영화이야기-유 캔 카운트 온 미

2002-01-12     언론노보 편집국
케네스 로너갠 각본·연출 <유 캔 카운트 온 미> 고아 남매의 대립된 삶을 통해 가족 중요성 담담히 그려 실감나는 배우연기 영화품격 높여 이른바 '가족영화'(Family Movie)는 100년이 넘는 영화사에 비하면 그 역사가 그리 깊지 않다. 영화사가들에 따르면 1950년대 멜로드라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가족영화는 1970년대부터 부각되었다. 자본주의와 기계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가족의 붕괴, 이에 따른 위기의식을 담아낸 가족영화는 1980년대 후반 들어 본격화되었다. '유 캔 카운트 온 미'(You can count on me)는 가족영화다. 핵가족 시대에 혈연이 갖는 의미를 진지하게, 더러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레인 맨'(Rain Man)이나 '제8요일'(The 8th Day) 등에는 못 미치지만 근래 선보인 가족영화 가운데 수작으로 손꼽힐 만한 작품이다. 뉴욕 북부의 조그만 마을, 남매인 '새미'와 '테리'는 고아로 자랐다. 이혼한 뒤 8살 난 아들 '루디'를 홀로 키우며 사는 새미에게 한동안 소식조차 없던 테리가 찾아온다. 감방에 있니라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는 테리는 다시 떠나야한다며 누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불쑥 나타나 돈타령부터 늘어놓느냐는 누나의 면박에 테리는 마지못해 짐을 풀어놓는다. 새미는 북박이, 테리는 떠돌이다. 새미의 직장인 은행과 테리가 거쳐왔다는 알래스카는 각각 이들을 상징한다. 가치관과 생존방식이 다른 두 사람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파열음은 루디를 놓고 비롯된다. 테리는 자신의 방식대로 루디를 돌보고, 직장 일로 아들을 동생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새미는 아들이 동생을 닮을까봐 두렵다. 영화는 대부분 남매 등 두 등장인물들 사이의 크고 작은 '사건'과 실감나는 '대화'로 엮어진다. 이에 따라 화면은 풀 셧(Full Shot)보다 두 인물을 담은 투 셧(Two Shot)이 대중을 이룬다. 남매가 주인공이지만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새미에 놓여 있다. 새미는 조숙한 아들, 방황하는 남동생, 불륜관계를 맺게 되는 깐깐한 직장 상사, 뒤늦게 청혼하는 친구와의 재혼 등 갖가지 문제에 휩싸여 있다. 그런 새미의 어려움은 아들을 빗속에 내버려두고, 심지어 생부에게 데려가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산산조각 내게 하는 동생으로 인해 더욱 가중된다. 영화는 두 남매를 다시 갈라놓는다. 무조건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삭막한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할 만한 사람은 가족밖에 없음을 낮은 목소리로, 그 파장이 오래 가도록 새겨놓았다. 직장 상사를 만나러 가는 새미의 늦은 밤 외출을 놓고 테리와 루디가 번갈아 던지는 동일한 질문 등은 다소 느리고 칙칙한 드라마의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바꿔준다. 드라마와 마을의 자연 경관, 컨트리풍 배경음악의 조화도 돋보인다. 마을 신부가 테리에게 던지는 '당신의 인생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에 해당된다. 새미의 구체적인 불륜 묘사는 영화의 전반적인 톤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는 영화의 품격과 재미를 높여 놓았다. 새미는 '트루먼쇼'의 로라 리니, 테디는 '라이드 위드 데블'의 마크 러팔로, 루디는 '리치 리치'의 로리 컬킨이 맡았다. 로라와 마크는 이 영화로 각종 유명 국제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았다. 형 맥컬리 컬킨에 가려져 있던 로리의 연기도 그럴 싸하다. 브로드웨이 극작가로, 영화 '애널라이즈 디스' '잃어버린 전사'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케네스 로너갠이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도 했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 배장수(경향신문 생활문화부 차장)/ 언론노보 320호(2002.1.12)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