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호]다시 그길을 갑니다 - 권영길 대표
2000-05-03 KFPU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
동트는 신새벽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부르튼 민중의 손에서 가능성 확인
먼저 지난 4·13총선운동기간동안 저에게 보내준 물심양면에 걸친 크나큰 성원에 이 지면을 빌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선후배들의 뜨거운 성원에도 불구하고 저의 국회진출의 길을 열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도 목말라하던 진보정치세력의 국회진입이 좌절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대표인 저보다 더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진보정치세력의 '확인된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지금도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 결려에 힘입어 다시 힘찬 발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다시 걷는 길이 정말 힘든 고난의 길임을 잘 알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아니 포기해서는 안되는 길이기에 또 걷고 있습니다.
한달여의 선거운동때 저는 헤일수 ㅇ벗을 만큼의 많은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악소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를 울린 많은 손들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손들, 들에서 캐온 쑥이랑 채소 몇다발을 시장바닥에 깔아놓고 팔고 있는 할머니들의 거친 손들이었습니다. 그 거치디 거친 손을 잡으면서 저는 "내가 꼭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출신 국회의원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지금 선거는 끝났지만, 이 마음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생각은 요즘 세태로 참으로 멍청한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언론노련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그리고 그 후에도 저에게 '손쉽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제의들이 잇따랐습니다. 역대정권의 여러사람들이 "일단 국회의원이 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진보정치를 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유혹(?)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제의들을 거부하고 진보정당창당의 길에 나섰던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대표에 국회의원 선거까지 나선 저의 지금 신분은 분명 정치인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정치인의 길이 아니라 언론인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론인 정신에 가장 충실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인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회를 올바르게 만들어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사회를 인간중심의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미국의 초국적자본들이 불어제낀 세계화 바람 속에 휘말려 날이 갈수록 황폐화돼가고 있습니다.
경쟁은 이어야지만 그 경쟁이 '만인을 만인의 적'으로 만들어 '더불어 사는 세계'를 파괴하는 경쟁이라면 인간사회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부르짖으면 한물 간 사고, 시대에 맞지 않는 목소리라고 치부해버리는 오늘의 세태입니다. 아무리 오늘의 풍속이 이러할지라도 '사람사는 세계'를 만들어 간 사람들이 있어야 할텐데 그 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원급 몇푼 더 받는다고 해서 아직은 사회발전의 대안조직인 노동조합까지 해체해버리는 언론계 풍토는 우리들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이 절망이 희망을 잉태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만들어 낼 언론계 후배들이 있을 것을 믿고 있습니다.
/ 언론노보 280호(2000.5.3)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