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12년 전 오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묻는다.

2021-07-22     언론노조

[성명]

12년 전 오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묻는다. 
 

  2009년 7월 22일 오후 3시 35분 개의된 국회 본회의는 한편의 군사작전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진실을 왜곡하며 불의한 권력의 탄생과 유지에 충견 노릇을 해 왔던 보수 족벌 신문에 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은 불과 20여 분만에 날치기 처리됐다. 

  재벌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제한해 왔던 빗장이 풀리고, 보수 족벌 언론들의 스피커가 대폭 확장됐다. 5.18 북한군 침투설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허위 조작 정보가 무차별 살포됐고 생존권을 놓고 싸우는 시민과 노동자를 불순한 혐오의 대상으로 공격하는 왜곡이 공론의 장을 뒤덮었다. 언론을 언론답게 만들고자 불의에 저항하는 언론 노동자들에게는 해고와 징계의 칼춤이 이어졌다. 방송시장은 정상적이고 합리적 경쟁이 불가능한 정글로 바뀌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시청률 전쟁이 정론직필과 건강한 콘텐츠를 대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2년 전의 오늘, 집권 한나라당이 주도한 미디어법 날치기는 대한민국 언론을 망친 독극물이었으며, 이제는 그 후유증이 과연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12년 전 오늘이 만들어낸 황폐한 미디어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혼탁한 대선 정치 놀음 속에 허우적대고 있는 거대 양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 

  12년 전 국회의사당에서 날치기를 규탄하며 언론자유를 수호하겠다고 외쳤던 민주당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해고와 징계를 무릅쓰고 모든 것을 던지며 싸우던 언론 노동자들의 희생 앞에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약속하며 기득권 포기를 말하던 민주당의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종편의 폐해를 바로 잡겠다고 공언하던 사람들과 종편 앵커를 모셔다 미디어 강의를 듣고, 이제는 종편에서 대선후보 토론회까지 여는 어느 당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인가? 

  12년 전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는 언론 노동자와 함께하겠다던 그 정당은 독소조항 가득한 징벌적 손배제 법안을 언론개혁이라고 밀어붙이는 그 정당과 같은 정당인가?

  12년 전 언론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영구집권을 꿈꿨던 한나라당의 후신, 국민의힘은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자신들의 언론장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반성도 없이, 온 국민이 다 아는 언론장악 끄나풀을 공영언론 이사로 추천하고, 국민 참여를 통해 자신들이 농단해 왔던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정상화하자는 요구에는 끝없는 입법 방해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에게 다시 권력이 넘어가면 언론판에 무슨 일이 다시 벌어질지 안 봐도 비디오다. 

  우리는 적어도 촛불 시민들이 만든 기회를 통해 집권한 정부 아래서는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자유가 더 이상 위협받지 않으며, 권력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은 제도적으로 보장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지겹도록 익숙한 무책임과 박멸되지 않은 언론장악 DNA 아래 12년 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아니 더 곪을 대로 곪은 7월 22일을 다시 마주한다. 

  그러나, 적대적 공생으로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거대 양당 체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의 땀과 눈물, 동지의 목숨을 담보로 했던 언론자유, 방송독립 투쟁의 강물을 막을 수는 없다. 막히고 쓰러진 그 지점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일어설 것이며, 퇴행과 무능, 변절로 점철된 낡은 정치에 균열을 내고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의 역사를 담담히 써 내려갈 것이다.


2021년 7월 22일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