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대통령 집무실 보안 앱 강제, 소통은커녕 사찰마저 두렵다
대통령경호처가 대통령 집무실 출입 기자의 휴대폰을 안전 조치 대상으로 보고 보안 애플리케이션(앱)을 반드시 깔게 했다. 보안 앱을 깔 수 없는 휴대폰에는 카메라 창에 ‘사용 금지’ 딱지를 붙이게 했고.
매우 딱딱한 경호 체계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제5조(경호 구역의 지정 등) 제3항 ‘경호 구역 질서 유지, 검문·검색, 출입 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 조치 등 위해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경호처장이 ‘경호 업무의 수행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제1항)’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 출입 기자 휴대폰에 ‘안전 조치’를 한 셈이다.
경호처는 그동안 도깨비방망이 같은 이 법률 뒤에 숨어 “필요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해 왔다. 휴대폰이 대통령에게 어떻게 얼마나 위해를 가할 수 있는지를 두고 기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 채 “보안상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한때 “휴대폰이 폭발물 무선 기폭 장치로 쓰일 수 있다”는 옹색한 이유를 내놓기도 했지만 터무니없는 억지였기에 물낯 아래로 내려간 지 오래다. 만에 하나 걱정되더라도 대통령 갈 길에 폭발물 티끌조차 없게 더욱 잘 살피는 게 낫지 주변 휴대폰마다 앱을 깔게 할 일은 아닐 터다.
대통령 집무실 출입 기자는 가뜩이나 ‘기자실과 화장실과 매점’에 갇힌 상태다. 휴대폰을 들고 대통령과 비서실 가까이에 놓인 뭔가를 몰래 촬영하거나 녹음하기 어렵다. 아예 가능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한데 보안 앱을 반드시 깔라 하니 다른 걱정이 솟게 마련.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들끓었던 사찰 의혹 말이다. 휴대폰 이용자의 위치 정보 따위를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걱정되는 앱이지 않은가.
“전혀 없습니다.” 지난해 6월까지 2년 동안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한 언론인은 백악관을 오가며 자기 휴대폰에 미리 뭘 깔거나 붙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미 국방부처럼 출입 절차가 조금 까다로운 곳에서도 “휴대폰에 뭘 붙이거나 보안 앱을 깔도록 요구받거나 한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검사를 미리 했을 뿐 휴대폰을 비롯한 취재 장비를 자유롭게 썼다.
지난 13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기자실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예정에 없던 기자들 질문이 이어지자 최영범 홍보수석비서관은 “자꾸 이러시면 제가 (대통령을) 못 모시고 내려와요”라고 말했다. ‘기자실과 화장실과 매점’에 갇힌 기자들은 ‘먹통 같은 휴대폰’을 손에 든 채 그저 홍보수석이 모시고 내려올 때에나 대통령과 ‘소통’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2022년 5월, 한국 대통령실 경호 체계가 몇 세기에 걸맞을지 자못 궁금하다. “소통”을 앞세워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간 대통령은 도대체 누구인가.
2022년 5월 17일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