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처참한 몰골 드러낸 언론 윤리, 더 이상 말로는 안 된다.

2023-01-09     언론노조

 소액 매수 가능. 20년여 전 한 재벌 비서실에서 기자 집단을 관리하며 정리해 둔 기준이다. 기자를 정치인이나 판검사처럼 꾸준히 관리해 봤더니 큰돈 들이지 않더라도 쉬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얘기. 그때 언론은 스스로 권력화했고 정치 세력과 자본에 휘둘리며 국민의 알 권리를 훼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를 부끄러이 여겨 산업별 노조 출범 1년 만인 2001년 11월 23일 ‘언론인 자정 선언’과 함께 강령을 천명했다. “우리는 어떤 내외부 간섭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한 것. “취재 및 보도,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품 수수 등 직접 이익은 일절 도모하지 않고 간접 이익도 엄격히 제한해 높은 청렴성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는 대외 활동에서 사회 공기(公器) 역할 수행을 자임하며 이를 위한 높은 도덕성을 유지한다”고 다짐했다. “자정 선언 취지가 반드시 언론인 활동 현장에 뿌리내리도록 구체적인 실천 계획에 입각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뜻을 거듭 가다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다짐은 20여 년이 지나도록 언론계 전반에서 공염불에 그쳐 왔음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초호화 외유 접대를 받았는가 하면, 삼성전자 사장이 준 선물과 배려에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참으로 모르는 듯싶은 문자 인사를 한 유력 언론인이 부지기수였다. 가짜 수산업자 김 아무개로부터 접대를 받고 고급 자동차를 제공받은 TV조선 앵커와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있었나 하면, 김만배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쓰거나 명품 선물을 받은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채널A 기자까지 드러났다. 여기에 김만배와 골프장에서 어울리며 100만 원에서 수백만 원씩 부당한 돈을 받아 쓴 언론인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계 전반의 도덕성은 완전히 붕괴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매체를 불문하고 언론계 전반은 생존 위기에 내몰려 있다. 그러나 처참한 몰골을 드러낸 도덕성과 무너진 신뢰로는 민주주의 핵심 기능으로서 언론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요구할 염치도, 명분도 없는 게 우리가 직면한 현실임을 언론계 전체가 각인해야 할 것이다. 

 몇몇 미꾸라지들이 일으킨 흙탕물이라고 여기기엔 김만배 사태가 초래한 도덕성 붕괴와 언론 불신은 그 파장이 깊고 크다. 이미 ‘양치기 소년’이 돼 말의 믿음을 잃은 언론계가 공멸하지 않으려면 남은 방법이 많지 않다.  

 우선 ‘김만배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언론인들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취재 현장에서 퇴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의 알 권리와 권력 견제를 위한 취재보다 사적 이익을 위한 김만배의 놀이터로 변질된 낡은 출입처 문화도 혁파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언론계 전체는 스스로 저질 언론과 언론인을 시장에서 퇴출시킬 강력한 규제 체제를 즉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말뿐인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자정 노력을 증명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김만배 사태에 연루된 부끄러운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양심적 언론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취재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목욕물을 버리다 아이까지 버리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썩은 암덩어리들은 과감하게 도려내되 깊은 자성과 중단 없는 노력으로 언론 개혁의 길을 열고 신뢰를 바탕으로 언론자유를 고양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책무임을 다시 곱씹는다.  

 

2023년 1월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