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 성명] 언론 신뢰를 스스로 퇴행시키는 문체부에 경고한다
2021년 불거진 ‘ABC 부수공사 조작’은 갈수록 신뢰를 잃어가던 한국 언론에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세계 각국 인쇄매체의 부수를 공개하는 국제기구 ABC의 회원사였던 한국ABC였기에 이 사건은 국내뿐 아니라 대외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갑자기 문체부가 이 ABC를 다시 소환할 모양이다. 그 배경에는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열독률 조사가 ‘조작’되었다는 한 인터넷 매체의 연속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에 이어 신전국대학생대표협의회가 지난 6월 28일 언론재단의 표완수 이사장과 열독률 조사 책임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 보수 시민단체들과 매체들은 열독률 조사 등을 포함하는 정부광고지표 점수가 조작돼 신문사들 간의 정부광고단가 순위가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여당의 소위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에서 자행된 언론시장 조작과 교란행위를 규명해야 엄벌해야 한다”며 이 사안을 천박한 정쟁 거리로 만들고 있다.
전국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신노협’)는 ABC사태 발생 당시, 이토록 부실한 조사 결과가 정부광고라는 공공 서비스 재원 운용의 참고자료로 쓰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새로운 정부광고지표 개발을 요구했다. 우리의 입장은 명확했다. 어떤 정치적 지향의 언론이라도 정상 경영, 독자 참여, 고용 안정, 자율규제 참여 수준 등의 상식을 따르는 언론이어야 정부광고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전신노협은 정부광고지표 개선안 발표에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최소한의 요건을 ‘사회적 지표’로 포함된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돌연 문체부는 ‘열독율 조작’에 대한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과 원인을 찾기도 전에 “지속적인 불신과 논란”이라며 이 지표를 전면 재검토하고 ABC협회의 유료부수를 다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이미 국제적으로도 신뢰를 잃은 ABC협회를 다시 소환한다는 것은 문체부 스스로 언론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행위다.
ABC협회가 조작 사건 이후 지금까지 취한 태도를 보자. 이들은 문체부가 조작 사건 직후 제도 개선 방안 제출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나아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직후에는 ‘문체부도 적폐청산'하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조작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것이다. 주지하듯 현행 정부광고 지표는 열독률 외에도 매체사의 사회적 책무 수행 여부와 정상 운영 여부 등을 따질 수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열독률 조사를 빌미로 다시 ABC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자는 식의 무책임한 말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과 여당이 열독률 조사를 빌미로 언론재단을 흔들고, 언론정책 전반을 정치적인 목적에 종속시키려 드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권의 압박 속에서 뜬금없는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만들고 ‘대통령 관련 오보'를 빌미로 기자 해외연수를 취소하는 등 수세에 몰려왔던 언론재단이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언론 규제기관이자 정책집행기구로 바뀔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우리는 열독률 조사의 문제라는 ‘일부분’이 공공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 언론사를 선정하는 정부광고지표라는 ‘전체’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며 ABC협회 부수공사라는 퇴행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2023년 7월 7일
전국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