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언론자유 위협하는 문제적 판결, 정정보도문이 말하는 사실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나왔다. 오늘(12일) 서울서부지법에서는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후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발언을 보도한 MBC에게 정정보도 소송을 신청한 외교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2022년 9월 당시 이 보도는 국민의힘의 MBC 항의 방문, 외교부의 강경대응, 대통령실의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전 국민이 '듣기 평가'에 임하도록 하는 등 한 편의 희극처럼 시작됐다. 무엇보다 국민의 관심은 단어 하나의 명확한 전달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내뱉은 비속어의 문제였다.
미국 의회였든 한국 국회였든 어느 쪽이라도 ‘이XX들’이라는 욕설을 들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국가정상의 기본적인 품격을 떨어뜨린 대통령의 오만한 태도를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한 MBC’라는 전혀 다른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해당 발언의 기술적 분석 결과, 외교부의 당시 맥락 설명, MBC의 보도 근거 등을 고려하여 해당 보도가 ‘허위보도’라고 판단하였다. 요약하면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의 명확한 단어의 식별이 기술 검증으로 불가했으며, MBC가 ‘바이든’이라고 보도할 때에도 정확한 기술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현장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들었다고 주장하는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외교부의 배경 설명은 이 발언이 “대한민국 국회를 상대로” 했다고 판단하는 근거로 인용됐다.
결국 법원의 판결은 기술적 검증에만 집중하고 외교부의 맥락 해석만 받아들여 당시 대통령의 발언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해명하지 못한 외교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게다가 법원이 직접 MBC에 정정보도문 내용과 표출 방식까지 지정했다.
언론중재법에서 정정보도란 “언론의 보도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이를 진실에 부합되게 고쳐서 보도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진실이 무엇인지도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위보도로 결정하고 정정보도를 내라는 법원의 판결은 어떤 국민의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설령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 해도 원고인 외교부가 명백한 증거를 통해 사실이 무엇인지 증명하지 못한 이상 정정보도가 아닌 외교부의 ‘해명’을 반론보도 형식으로 지시하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 정정보도가 말하는 사실이 무엇인지 추론 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 법원 판결은 비록 1심이지만, 결과적으로 국가가 언제라도 한미동맹과 같은 ‘국익’을 명분으로 언론을 통제할 판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언론자유 침해의 법적 면죄부를 준 정치 판결이다. 이번 판결로 MBC 뿐 아니라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보도한 모든 언론사에게 정부가 정정보도를 요청할 근거가 되었다. 또한 정부가 언론사에게 막대한 소송비용 부담을 지우고 인정할 수 없는 정정보도를 법원의 판결로 강제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국가 검열의 자유를 허용한 무책임한 판결이다.
처음부터 이 문제의 해법은 명확했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의 여부와 비속어 발언의 맥락은 그 발언자인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로 끝낼 수 있었다. 국가 정상이 공식 외교 석상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실수나 사적 대화가 언론에 보도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예컨대 2011년 1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두고 비난한 대화가 언론에 유출되었을 때도 그랬다. 당시 이 대화가 외교문제로 비화되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오늘의 이 판결을 결코 비판 언론에 대한 승리라고 오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제의 진원지인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기관을 앞세워 법원에 보도 내용의 검열과 정정보도를 요구한 것 자체가 심각한 언론자유의 침해다.
‘국익’은 대통령의 자존심이 아니라 국가정상이 가져야 할 품격과 국민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판결을 빌미로 언론탄압 명분쌓기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무려 1년 넘게 온 나라를 피곤하게 만든 코미디 같은 소송에 대해 사과하고, 전방위 압수수색 등 대통령 명예훼손에 대한 수사를 중단시켜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국익을 지키는 길임을 깨닫기 바란다. .
2024년 1월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