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대기업 민원창구 발전방안 폐지하고 국회 미디어개혁특위를 설치하라

2024-03-13     언론노조

대기업 민원창구 발전방안 폐지하고 국회 미디어개혁특위를 설치하라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정책 발표에 대한 평가

 

기조도 없고 계획도 없다. 오늘 오전 발표된 국무총리 산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 발전방안(안)>(발전방안)이 바로 그렇다.

발전방안은 콘텐츠 산업 경쟁력 강화, 미디어•콘텐츠 부문의 규제 혁신, 글로벌 진출 및 신시장 선점 총력 지원,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이라는 네 가지 추진 전략을 제시했지만 새로운 방안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지난 정부 때부터 미뤄둔 미디어 사업자의 규제 완화 요구만을 정리한 민원 처리 절차에 불과하다.

게다가 발전방안이 공개된 시점도 이해할 수 없다. 전국을 순회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주최한 19차례의 민생 토론회에서는 애초 계획했던 미디어 분야가 사라졌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관권선거 논란을 자초하면서까지 실행 가능성과 재원마련 방안등이 거세된 포퓰리즘 쇼를 강행해 온 윤석열 대통령실이 유독 미디어 분야만 토론회 자체를 포기한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오로지 장악과 탄압으로 이제는 국제적 망신의 수준으로 추락시켜 놓은 대한민국 미디어 공론장의 황폐화만 부각될 상황에서 답정너식 토론회를 열어봤자 윤석열 정권의 시대착오적 퇴행과 빈곤한 철학, 내용없는 미디어 정책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전방안의 가장 큰 문제는 통신3사, CJENM,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자본력과 IP를 가진 대기업에 세제 완화 및 기금 조성의 특혜를 주겠다는 사실상의 친재벌 미디어 정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가 또 다시 거대 글로벌 OTT에 납품되는 경로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문화 콘텐츠 산업의 국제적 수직계열화를 불러 국내 산업을 글로벌 자본에 의한 문화주권 침탈과 종속을 강화하고, 콘텐츠 산업 현장의 부익부 빈익빈, 약탈적 비정규 불안정노동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미 미디어 시장을 분점하고 있는 자본에 대한 특혜라는 점은 유료방송에 대한 큰 폭의 규제완화에서 알 수 있다. 유료방송 점유율 규제 폐지, 채널 편성 규제 완화, 재허가•재승인 기간 및 조건 부여 완화 등은 전국 사업자의 민원처리일 뿐 지역의 중소 방송사와 같은 콘텐츠 제작 부문에 대한 진흥책은 어디에도 없다.

특히 지상파, 종편보도채널, 유료방송에 대한 재허가•재승인 규제의 대폭 완화는 그나마 유지되었던 미디어 노동자와 시청자(이용자)의 평가 및 의견이 제시될 창구를 좁혀 놓고 있다. 재승인 규제에 불만을 쏟아내던 보수 종편 사업자에 대한 특혜임은 말할 나위 없다.

가장 어처구니 없는 정책안은 지상파 민영방송의 소유•겸영 완화와 지분 소유가 제한되는 대기업 기준의 완화다. 이미 자산 규모 10조 원을 넘은 SBS 최대주주 태영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SBS까지 채권단에게 담보로 내놓는 상황을 보고도 이런 안을 내놓을 수 있는가. 태영은 지금도 건설부문 부실로 인한 자신들의 방송 지배력 상실을 막기 위해 과거 공짜로 SBS에서 분할해 간 자산을 SBS에 거액에 되팔아 현금을 챙기며, 봉이 김선달 뺨치는 부도덕한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문재인 정부 때부터 요구한 건설•금융•제조업 등의 산업자본과 미디어 자본의 소유 분리가 왜 필요한지 이번 태영 사태로 분명해 졌다. 모기업의 리스크를 떠 넘길 수단으로 공적 자산을 쓰는 지상파 방송사의 재정과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는 대기업 규제 완화는 한국의 콘텐츠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발전방안이 내놓은 정책보다 침묵한 정책과제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약속했던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공적 책무 중심의 협약 제도 도입’은 사라졌고, 위기에 처한 지상파 방송광고의 결합판매 제도 개선에 대한 대비책도 전혀 없다. 지난 겨울 대통령이 거부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다.

결국 총선 국면을 맞아 졸속으로 발표한 이번 발전 방안은 국내 미디어 대기업과 보수 언론사에 던져주는 당근일 뿐이다. 정확한 법령과 시행령의 개정, 법률 개정의 일정도 없는 발전방안은 어떤 구속력도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2대 총선 정책 의제로 미디어 공공성 확보를 위한 규제 및 진흥 체계의 전면 개편을 요구했다. 국무총리 산하의 위원회 정도로는 사업자 민원 창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발전방안으로 명확해 졌다. 이런 식의 땜질 처방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2대 총선에 나서는 모든 정당은 총선용 특혜 공약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22대 국회에서 미디어 규제 진흥 체제 전반을 개혁할 미디어개혁특별위원회의 설치를 약속해야 할 것이다.

 

2024년 3월 13일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