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청래 의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정청래 의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이 그제(9일)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 <정청래의 알콩달콩>에 자신이 발의한 언론중재법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발의한 법안의 설득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의 합리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을 향한 모욕과 비하까지 담겨 있다.
징벌적 손배배상에 대한 정 의원의 입장, 특히 ‘가짜뉴스’에 대한 그의 주장을 보자. 페이스북의 글 중 “나의 언론중재법에 대한 진보매체와 보수매체 이권 동맹에 의한 융단 폭격도 내용을 보면 ‘가짜뉴스성 기사’가 많다”며 “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조중동과 입장이 같”다고 평가했다. 어떤 내용이 ‘가짜뉴스’인지 소상히 밝혀주길 바란다. 아울러 ‘가짜뉴스’로부터 보호하려는 국민이 누구인지도 명확히 하시라.
십여 년 전부터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마주한 각국의 극우 정치인들은 언론 비판을 모조리 ‘가짜뉴스’로 몰아 공격하고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가짜뉴스’라는 말 자체가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가리지 않고 붙였던 멸칭이었다. 윤석열 정권 또한 입만 열면 ‘가짜뉴스’ 타령을 하며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과 압수수색을 남발해 왔다. 그 결과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폭락이었다. 이런 윤석열 정권 아래 언론 탄압의 상징이었던 이동관이 찬성했던 징벌적 손해배상과 정 의원이 주장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무엇이 다른가? 이동관과 윤석열이 하면 언론장악이고, 같은 법안도 정청래가 하면 언론개혁인가? 출발부터 정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의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 의원은 언론노조의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입장을 두고 “한때의 동지도 천지분간을 못하는지 알량한 언론의 동종의식인지 몰라도 언론중재법 반대를 외치는걸 보면서 씁쓸하다”고 했다. 정작 씁쓸한 것은 언론노동자들이다. 헌법가치인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한 문제의식과 이견을 ‘천지분간 못하는 동종의식’ 따위의 표현으로 매도하는 원내 제 1당 최고위원의 가벼운 인식과 발언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문제에 조변석개하며 기회주의적 작태를 일삼고 있는 일부 보수 언론과 달리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아래 구체적인 통합자율규제방안, 민사소송에서의 명예훼손 위자료 인상 등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 언론노조 및 언론현업단체들을 한데 뒤섞어 비하한 것도 번지수가 틀렸다.
정 의원이 주장하는 방향이 언론자유와 사회민주화의 궤적과 일치할 때 언론노조는 동의하고 지지를 보내지만, 그렇지 않을 때 언론노조는 비판과 이견을 제시해 언론 자유의 가치를 지켜가야 한다. 정 의원이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바로 우리의 비판과 견제 대상이다. 이것이 정치와 언론의 상식적 관계가 아닌가. 민주당과 정청래가 하면 언론노조의 원칙과 강령을 위배해도 물개박수나 치라는 것인가.
정 의원은 언론노조에게 “당신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 물으며 “제발 얄팍하게 얍삽하게 굴지 마시라! 그럼 정의로운 싸움의 동력을 잃게 되고 진짜 언론의 자유가 무너지게 된다는 걸 알기 바란다”며 훈계했다. ‘정의로운 싸움’의 동력을 과연 누가 잃게 만들고 있는가? 22대 국회 개원 직후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공영방송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 방송3법 개정을 위한 싸움의 한복판에 있다. 이 위중한 시기에 3년 전 다수의 언론 현업단체, 시민단체 뿐 아니라 국경없는 기자회, 유엔인권이사회까지 반대한 법안을 재추진하는 것이야말로 싸움의 동력을 잃게 만드는 행위가 아닌가. 우리의 입장은 문재인 정부 때나 윤석열 정부 때나 변함없는 원칙에 따르고 있다.
정 의원이 우리에게 정체성을 물었기에 답하고자 한다. 언론노조의 정체성은 강령 1조에 적혀 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깊이 인식하고 공정보도를 가로막는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 편집・편성권 쟁취를 위한 민주언론 수호투쟁”에 나서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방송3법은 국민의힘 뿐 아니라 민주당에게도 공영방송을 정치적 수단으로 쓰지 말라는 정치 독립법이기에 언론노조의 강령에 부합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정당과 정치세력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우리 강령에서 예외일 수 없다. 비판과 감시의 억압 수단으로 쓰일 게 뻔한 징벌적 손해배상에 반대하는 우리 입장이 그만큼 굳다는 뜻이다.
공영방송을 정권의 선동수단으로 만들고 있는 현행 방송법에 맞서 방송3법을 요구하고, 자신들에 불리한 보도만 나오면 민형사상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입틀막을 자행하는 정치 권력에 맞서는 것이 진정한 언론 자유로 가는 길이다.
윤석열 정권을 비판하고 견제하려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게 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정의로운 싸움”이라 말하는 정 의원에게 자신이 쓴 말을 돌려드린다. 정 의원은 정체성은 무엇인가? 윤석열 정권에 맞선 언론자유 수호인가? 윤석열 정권에 칼을 쥐어줄 징벌배상 도입인가? 방송3법 입법 틈타 얍삽하게 징벌배상 끼워팔려 하지 마시라. 눈 앞의 이익에만 골몰하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수포로 만들고 윤석열 정권에 장악의 길을 깔아준 지난 정부의 실패를 곱씹어 보시라.
2024년 6월 11일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