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한동훈 대표는 거부권 뒤에 숨지 말고 합리적 보수의 면모를 보여라.
[성명]
한동훈 대표는 거부권 뒤에 숨지 말고 합리적 보수의 면모를 보여라.
- 방송4법 국회 통과에 대한 언론노조의 입장
지난 25일(목)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운영법으로 시작된 방송4법이 5박 6일간의 필리버스터를 끝내고 오늘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상수’가 남았다.
어제(29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해당 법안에 대해 “민주당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MBC를 비롯한 방송을 계속 장악하겠다는 의도”라 주장하며 방송4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주문했다.
방송4법에 대해 국민의힘은 21대 국회 막바지였던 작년 11월 9일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 발언을 동어반복하고 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도 마찬가지다. 한 대표가 굳이 ‘방송 장악’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은 취임 후 15차례의 거부권 행사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다.
게다가 한 대표는 어제 발언에서 정권 교체란 곧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교체와 동의어라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공영방송 사장 교체 시기에 빗대어 “오히려 우리 정부는 사장들을 비롯한 집행부에 대해서 상당 기간을 허용해 줬다”는 말이 그것이다. 정권을 탈환했으니 당연히 공영방송 사장을 갈아치워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인내심과 아량으로 여유를 주었다는, 그야말로 ‘윤비어천가’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은 임기가 남은 KBS 김의철 전 사장을 이사진 교체를 통해 중도 해임했으며, 이 사안은 현재 소송에 휘말려 있다. 또한 MBC 장악을 위해 임기가 남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이사들을 해임하려다 법원의 제동에 의해 강제로 중단되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KBS는 이미 친정권 방송으로 전락했고, 윤석열의 허락이 아니라 법원의 제동에 의해 장악이 가로막혀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MBC다. 집권 여당의 새 대표가 공영방송을 집권하면 ‘먹는’ 대통령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상황 인식은 민주주의 퇴행과 언론자유의 파괴, 방송장악을 둘러싼 극한 대립과 거부권 정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가늠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한 대표에게 열흘도 지나지 않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의 의미를 잊었는지 묻고 싶다. ‘배신의 정치’를 들먹이며 ‘윤심’을 거역한 후보라는 대통령 충복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과반 이상 표를 얻은 의미 말이다. 한 대표의 당선은 국민의힘 당원 다수가 윤석열식 국정운영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자, 시대착오적 입틀막과 언론탄압, 방송장악과 결별하라는 보수 내부의 요구였다. 다시 말해 극우와 독재가 아니라 합리적 보수가 되라는 뜻이다. 한동훈 대표가 이런 변화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진숙 같은 극우 인사를 싸고 돌며, 윤석열식 방송장악을 정당화하고 ‘윤석열 시즌2’로 일관한다면 총선 대패에 이은 민심 이반과 집권 여당 참패는 정해진 미래가 될 뿐이다.
한 대표를 위시한 국민의힘은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지난 총선에서 2년 전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 320만 명이 여당 지지를 철회했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은 대통령 충복들에게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방송법 개정에 대한 한 대표의 발언에서는 이런 위기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도리어 국민의힘은 남은 대통령 임기 동안 대통령이 ‘윤허’하지 않으면 국회의 모든 법률 개정에 반대하겠다는 헌법기관의 직무 유기로 일관하며 거부권 하나로 버틸 기세다.
언론노조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민주당도 민주당이지만, 국민의힘이라는 집권 보수 정당의 ‘정상화’가 없이는 암울한 국민의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가고 있는 대한민국 언론 자유와 미디어 생태계가 복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은 늘 언론노조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목하며 현장 언론 노동자들의 저항의 역사를 ‘장악’으로 매도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군사독재와 보수 정당 집권기를 관통해 온 반헌법과 불법의 방송 장악에 대한 언론인들의 반작용일 뿐이며 윤석열 정권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국가적 불행이다.
보수의 눈에도, 진보의 눈에도 서로가 ‘방송장악’을 말하는 현실은 극단화된 정치가 그대로 이식될 수밖에 없는 현행 방송법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도를 바꿔 문제를 푸는 것이 정치다. ‘너도 했으니 나도 한다’는 논리는 보복일 뿐 정치가 아니다. 언론노조의 방송법 개정과 방송독립 요구에 무조건 동의하라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보수 정당의 대안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존중과 품격으로 대화가 가능한 보수로 진화해야 정치가 바뀌고 반대편의 진보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언론노조는 국민의힘에게 분명히 요구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한 대표의 말처럼 “우리 당의 이익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방송과 언론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집권여당의 대안을 제시하라. 방송4법에 대한 여당의 대안 제시와 적극적인 협의 자세야말로 퇴행하고 있는 의회 민주주의의 복원과 언론자유에 대한 집권 여당의 변화된 인식을 확인하고, 추락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돌파구가 될 것이다.
2024년 7월 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