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호]산별특집-언론노동운동이 갈 길

2000-09-27     kfpu
비정규직작은사업장함께 나가야진정한 언론산별소외집단 배제하면 울타리 무너져창립정신, 순망치한의 교훈 새겨야연대(連帶)는 노조의 생명 조금은 길지만 정운영 선생의 칼럼에 다시 한번 신세지며 얘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으면서 모든 반대 세력을 한목에 적으로 돌릴 만큼 미련하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유대인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는 유대인이 아니잖아"라며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 사회주의자를 잡아들이자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닌데"라며 팔짱을 끼었다. 카톨릭 교도를 잡아들일 때도 "나야 카톨릭이 아니니까"라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구경은 오래가지 않았으니, 마침내 나를 잡으러 왔기 때문이다. 그제야 이웃에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은 "나는 네가 아닌 데"라면서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유대인이 잡혀갈 때, 카톨릭 신자가 잡혀갈 때 분연히 일어섰던들 내가 잡히는 일은 막았을 지 모른다. 그런 뜨거운 연대만이 핍박에서 승리하는 길이고, 오늘의 난국을 극복하는 길이다.> 9월 말 현재 언론산별을 향한 단위노조 투표 조합원 수가 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산별노조로 가는 길'은 이제 막바지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귀가 있어도 듣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고 고통스럽습니다. 오늘 얘기는 그들에게 보내는 읍소(泣訴)입니다. '우리끼리도 잘 할 수 있다' "전임자무급이든 복수노조 허용이든 우리는 문제없다. 우리 노조의 조직력은 최강이고 조합원은 똘똘 뭉쳐 있다." "산별노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리와는 무관하다." "조합원 수는 적어도 우린 아쉬운 것 없다. 어디든 출입기자실 전화 한통화면 다 해결된다." 우리끼리 해도 아쉬운 것 없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산별노조 뭐 하러 갑니까. 귀찮고 성가십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산별노조는 변화인데, 그거 싫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맞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득권의 논리에 다름 아닙니다. 다시 '처음처럼'입니다. <또 최초의 언론노동운동의 단초가 우리들의 자발적 노력보다는 외부의 도움에 의해 주어졌다는 점을 마음속 깊이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줄기찬 투쟁을 통해 보도 및 논평의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할 것을 다짐한다.>(1988. 언론노련 창립선언문 중) '내 월급 깎인다.' "솔직히 인정한다. 내 월급이 파견근로자의 3-4배, 연봉직의 2-3배에 이른다는 것을. 그런데 산별 가면 어찌되는가? 먹을 파이는 그대로인데 내 월급 깎아 그들에게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여기에 대해 산별은 답이 없다." 꼭지가 도는 말이지만 이런 얘기도 가끔 들었습니다. 7,80년대 군부독재와 싸울 때, 90년대 금융실명제와 금융종합과세를 시행할 때, 2000년 남북화해시대 보수 기득권의 속내가 어땠을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파견근로와 연봉제는 지속되어야 하는지요? 파견근로자와 비정규노동자의 희생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요? 잘못된 건 고쳐져야 하고 또 그래왔습니다. 노동조합이 사회구성원 다수의 요구를 외면할 때 거기서부터는 기득권과 특권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은 노동자의 조직이 아니라 특혜받는 노동귀족층의 조직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100년 전 유럽의 직능별노조가 그랬습니다. 한국의 기업별노조는 어떻습니까. 비슷합니다. 몇몇 대기업 기업별노조의 경우 기득권 추구를 넘어 반동화의 경향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약자와 함께 할 때, 다같이 살아 한국 노동운동의 화두는 비정규노동자와 중소사업장 노동자 문제입니다. 현재 비정규직은 천 삼백만 노동자 중 칠백만 명을 넘었고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결과입니다. 또한 500인 이상 사업체는 대부분 노조가 결성되어 있으나 중소사업장은 노조는커녕 근로기준법조차 적용을 못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들의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무관심해서야 어디 '언론'이랄 수 있으며 '노동조합'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노총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장에서는 냉랭합니다. 앞서 말한 '내 파이 줄어들 것 같아서'입니다. 연봉 1억을 받는 조합원에서 수백만 원을 받는 조합원까지 있는 언론사노조는 오죽 하겠습니까. 더구나 언론사노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특정 직종 정규직 중심의 이해만 대변하고 있고, 심한 경우 '약자'를 배제하기까지 합니다. 이래서는 노동조합의 미래는 없습니다. 산별 모두에게 절박한 문제 사정이 좀 낫다고 해서 '나만 살겠다'고 하면 결국 노동형제들의 등을 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산별노조는 비정규직이나 작은 사업장 문제에 매달릴 테니 우리에게 유리할 거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한번만 더 생각해 보십시오. 힘 있는 데가 약한 곳 도와주는 것, 그것이 연대의 기본이며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입니다.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것, 노력하는 것, 그것이 언론의 길이며 노동조합의 길입니다.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와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2002년 이후 노동조합이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중소노조는 대부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작은 노조가 폭넓게 살아 있을 때 큰 노조도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작은 노조가 없으면 큰 노조도 문을 닫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큰 뿌리만으로 살 수 없는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산별노조는 큰 노조와 작은 노조, 힘있는 노조와 약한 노조 모두에게 예외일 수 없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희망입니다.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박강호(언론노련 산별추진위 조직위원장)/ 언론노보 290호(2000.9.27)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