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호]읽으면 행복합니다

2000-10-25     kfpu
요쉬카 피셔 지음. 선주성 옮김. 『나는 달린다』 (궁리출판) 112Kg 무기력한 뚱보의 달리기첫발을 딛는 순간 정체된 삶도 함께 뛰기 시작한다삶에 부대끼고 그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특히 30, 40대들에게. 저자는 독일부총리 겸 외무장관인 요쉬카 피셔. 이 책은 그가 어떻게 달리기에 빠져 들었고 그 달리기를 통해 어떻게 그의 삶을 바꾸었는지를 소개한 자전적 에세이다.요쉬카 피셔가 헤센주 환경부 장관으로 있던 1980년대말. 그 때까지 그는 성공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환경장관직에 있으면서 그는 업무로 인한 엄청난 압박감과 책임감,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에 탐닉함으로써스트레스를 풀 듯, 그도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열심히 먹었다. 닥치는 대로 먹었다. 먹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고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75㎏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순식간에 112㎏로 늘어났다. 스트레스는 해소되었을지 모르지만 몸은 무거웠고 그무거운 몸이 그를 지치게 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더 큰 충격이 찾아왔다. 1996년, 부인이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당신같은 뚱보와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때 그의 나이 마흔 여덟.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남자 나이 마흔여덟에 찾아온 심각한 위기였다. 그저 단순히 살이 찌고 말고의 문제, 그래서 성인병에 걸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무엇인가 바꾸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달리기였다. 한 번 두 번 달리다보니 달리기에 매료됐다. 1년 남짓 지나자 42.195m의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의 준프로 마라토너가 되었다. 살도 빠져 75㎏의 정상적인 몸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살빼기에서 시작한 마라톤이었지만 그 결과는 엄청났다. 완전히 다른 생활 습관, 다른 삶의 목표가 생겨났고 그것이 요쉬카 피셔 한 개인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에게 있어 살이 찌고 다시 살이 빠진 것은 그저 단순한 육체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삶의 변화, 정신의 변화였다. 한 순간의 다이어트가 아니라 그의 삶의 지탱해 줄 삶의 영원한 가치를 발견한 것이었다. 40대라는 나이는 생물학적인 노화가 찾아오는 시기다. 그 노화는 수많은 정신적 갈등, 인생의 갈등을 가져온다. 자신감의 결여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요쉬카 피셔에게 달리기는 흔들리는 삶을 다잡아준 매개물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래서 읽는 이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고 그로 인해 더욱 감동적이다. 고교 중퇴의 학력에 택시운전사를 거쳐 독일외부장관까지 오른 피셔. 그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이다. 역경을 딛고선 그의 입지전적인 삶, 달리기를 통해 정신을 되찾은 의지 가득한 그의 삶이 독일인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일과를 마치고 자정 무렵이면 본의 거리를 달린다. 달리면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정체된 삶도 같이 달리기 시작한다"고. 이 책은 달리기 얘기를 담았지만 그것을 넘어선다. 다이어트 얘기를 담았지만 역시 그것을 넘어선다. 과장스런 다이어트 성공담도 아니고 정치인의 쇼맨십 가득한 그렇고 그런 책도 아니다. 절망과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뚱보 요쉬카 피셔라는 한 사람이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소중함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달리기는 하나의 은유다. 그것은 투명한 빛이고 상쾌한 바람이다.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지쳐있는 사람들, 무언가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 책을 읽고 달려 보라. 육체가 달려 나가는 만큼 자신의 정신도 성큼 앞으로 달려 나감을 느낄 것이다. / 언론노보 292호(2000.10.25)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