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호]디저털 칼럼-디지털 TV 비교실험의 오류

2000-10-25     kfpu
사실, 국가정보화 주요정책인 지상파 디지털화를 위해 정보 통신부는 방송사, 연구소, 업체 등과 협력하여 디지털 방송이 과연 잘 수신될 수 있을지 인력과 비용 투입하여 장시간 현장 실험을 실시했다. 실제로 2000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시내 도심 지역, 빌딩, 실내 등 많은 지역에서, 3개 주요 방송사 채널 모두를 대상으로, 비교적 적절한 수준의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올 8월 31일 한국 방송 공사(KBS) 공개홀에서 실험 결과 발표회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실험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디지털 방식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빌딩이 많은 도심 지역에서 수신율이 52%(아날로그 62%)이고, 실내 수신 또한 20% 정도로 참석자 모두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럼에도 정보통신부는 그들이 주장한 것처럼 산업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기존에 계획된 일정에 따라 미국 방식인 ATSC방식으로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밀고 나갈 것임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학계, 방송기술인 등 전문가들의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 제기에는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진실은 단순 명쾌하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미국식 디지털 방송방식은 아날로그에 비해 수신 상태가 개선된 것이 아니었다. 비교 실험을 한 이유는 과연 디지털 방송이 아날로그 방송보다 더 향상된 수신 상태를 유지하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절차이다. 불만스러운 결과를 얻었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때까지 최소한 디지털 방송을 연기하거나, 또는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여 시행 시기를 늦출 수 없다면 타 방식과의 비교 실험을 통해 더 나은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만약 60여 조원의 막대한 비용를 지불한 시청자들이 비싼 디지털 텔레비전의 화면이나 수신 상태가 아날로그 텔레비전 수상기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불만을 제기한다면 어쩔 것인가.또 하나의 진실. 비교 실험을 하려면, 김광호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디지털 방식간 비교실험"을 실시했어야 정당하다. 정보통신부가 비난받는 이유는, 이미 많은 나라들이 거부하거나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미국 방식을 실험하면서, 아날로그(현 NTSC) 방식과 디지털 방식(ATSC)간 비교 실험을 했다는 점이다. 비교 실험에서 비교 대상이 전혀 맞지 않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동급의 컴퓨터를 비교, 구입하면서, 236급 컴퓨터와 586급 컴퓨터의 성능을 비교한 셈이다.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험 오류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정보통신부가 오히려 미국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미 하원 청문회에서 시연해 보인 디지털 방송 실험에서도 - 일정한 금전적 수입과 기술 패권 유지가 가능한 자신들의 방식을 시험하면서 - 미국방식과 유럽 방식을 동시에 비교했다. 미국 방식에 불만을 품은 미국 방송사들이 제기한 사안이었지만, 실험 자체는 공정하게 진행됐다. 지금까지의 실험 데이터가 보여주듯, 미국 방식보다 유럽 방식이 더 훌륭한 수신 성공률을 나타내, 보다 나은 디지털 방송을 서비스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방식이 향후 기술 발전에 따라 수신 상태가 개선될 것이라는 정보통신부의 주장도, 이 청문회 자리에서, 기술적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상당 부분 입증됐다.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개최한 호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유럽 방식의 디지털 지상파방송을 서비스하고 있고, 이번 올림픽 중계 방송도 아무런 송수신 장애 없이 디지털화한 지상파로 방송되고 있음을 시드니에 파견된 우리나라 방송종사자들이 직접 눈으로 경험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미국, 유럽방식을 놓고 갈등하던 호주는, 엄격한 비교 실험을 통해 우수한 성능을 지닌 유럽 방식을 선택했고, 자국의 시청자들에게 만족스러운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서비스하고 있다. 문효선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전 편집장/ 언론노보 292호(2000.10.25)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