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호]정론직필

2000-11-08     kfpu
미국 대통령 선거의 주역은 단연 두 후보였지만 언론의 관점에서 우리들의 부러움을 산 또 한 명의 주역은 대선 TV토론의 사회자인 짐 레러(Jim Lehrer)였다. 짐 레러는 본래 신문기자 출신이라고 한다. 1959년 댈러스 모닝 헤럴드(Dallas Morning Herald)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미국의 공영방송 PBS로 옮겨 '짐레러와 함께하는 뉴스 아워 (News Hour with Jim Lehrer)'를 25년 째 진행하고 있는 것이 그의 경력이다. 짐 레러는 92년부터 96년 그리고 올해까지 모두 7차례나 대통령 후보 TV토론 사회자를 맡아 대선 토론의 사회를 '독점'하다 시피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대선토론 사회자로서의 위치를 배타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공정한 언론인으로서 세상을 공정하게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고, 사실과 의견의 구별, 구체적인 사안에 접근하는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는 침착함,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여유 등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정치권으로 가지도 않았고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권력이나 광고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영방송에 몸담고 있으면서 상업방송에서 엄청나게 받을 수 있는 몸값을 포기하는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미덕으로 꼽히고 있다.우리 나라에도 짐 레러가 존재하는가? 적어도 그에게 필적할만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언론의 길만을 그것도 올곧게 걷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이 권력과 자본 탓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우리 언론의 문제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짐 레러에 관한 논의가 갑자기 우리 나라 언론의 족벌체제나 정부 소유 언론사들의 굴종성으로 옮겨가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족벌들이나 정치 권력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개와 기품, 강직함과 초연함을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은 전적으로 언론인들의 몫일 것이다./ 언론노보 293호(2000.11.8)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