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호]조작강화에 매진하라

2000-11-25     언론노련
온갖 어려움 뚫고 산별노조 운동으로 성큼 올라선 동지들에게 축하 인사드린다. 언론노조 출범은 '완성'이기 보다는 새로운 '출발'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태산'이지만, 어련히 알아서 헤쳐나갈 동지들이 있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다만 조직과제와 관련해서 한가지만 당부하련다.'왜 산별노조를 만들었는가?' 다시 한번 스스로 물어보자. 벅찬 가슴으로 언론노조를 만들었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연맹 때와 비슷한 활동에 머무를 수도 있고, 똑같은 투자로도 이전 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를 버리고 산별노조를 택한 것은 양보다는 질의 변화를 쫓은 것이기에, 이 정도에서 언론노조 출범의 참된 뜻을 찾기는 어렵다.기업별 노조 운동 방식에서 느낀 힘의 한계 때문에 살길을 찾아서, 꼭 해결해야 할 높은 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추려 우리는 이 길로 들어섰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새로운 힘을 만들 수 있는가? 힘 솟는 샘물은 어디에 있는가? 잘라 말해서 지금 가입한 조합원수로는 아무리 열심히 뛴다 해도, 양이 아닌 질의 면에서 힘의 변화는 오지 않는다. 조합원수를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로 늘리지 않는 한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이 장벽을 깨는 일은 조직 노동자가 열 중 하나밖에 안 되는 한국 노동운동의 근본한계에 도전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서 '조합원 이익을 대변하는' 게 본성인 노조운동이, 조합원 대다수가 정규직 이기에 노동계급을 명실상부하게 대변하지 못하고 정규직 중심으로 움직여 고립돼온 문제와도 닿아 있다. 만약 전체 노동자의 절반, 아니 셋 가운데 하나 꼴로 조직할 수만 있어도 이 나라 운명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힘을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 조직 노동자 천 만 가운데 절반이 정년 퇴직한 노동자인 이탈리아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가입자격을 줘온 우리나라 기업별노조는 지구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돌연변이'이다. 노동운동의 힘이 쪽수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로 따져봐도 참으로 '생산성 없는' 알 수 없는 관행이요 습관이요 제도였다. 처음엔 자본과 정권의 방해 때문이었으나, 지금은 오직 우리 자신이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그게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언론노조여, 조건 없이 문을 활짝 열고 언론사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모든 노동자들을 받아들여 힘을 키우는 일, 여기에 도전해보자. 온갖 이름의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예비 노동자, 실업자, 정년퇴임 언론인을 조합원으로 하는 노조로 가보자. 그리하여 명실상부하게 '정규직 목'이 붙어 있을 때만 인연을 맺는 노조가 아니라,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언론인의 일과 인생을 책임지는 노조로 가보자. 이 목표를 쫓다보면 더 품 넓은 조직 틀을 찾게 될 수도 있겠다.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지만 역시 열쇠는 우리 안에 있다. '힘을 쓸 수 있는 산별노조를 향하여'라는 뚜렷한 방향, 아낌없는 투자, 그리고 말라버린 우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힘이 솟는 샘물이 어디에 있는지 차근차근 안내하는 세심한 사업작풍을 갖춰야 하리라. 지혜롭게 힘의 원천을 찾아 뿌리박는 언론노조를 기대한다.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언론노보 294호(2000.11.24)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