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호]'인간회복'과 희망의 깃발로
2000-11-25 언론노련
무슨 군소리가 필요할 것인가. 한마디로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출범을 축하한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그러나 명색이 '선배'로서 '후배들에 대한 당부'를 당부 받은 마당이다. 어쩔 수 없이 뱀다리의 사설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무릇 축하나 축복엔 그 나름의 문맥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거두절미된 현재만의 시간이 없듯이. 풀어 말하면 오늘의 축하엔 분명히 전국언론노조를 탄생시키기에 이른 지난날의 산고에 대한 경의가 빠질 수 없다. 언론노동자의 제자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산별노조의 회임과 출산은 얼마나 짙은 피와 땀을 요구했던 것인가. 축복 받는 오늘은 바로 그 결정(結晶)의 날일뿐이다.그러나 축하는 동시에 미래로 이어진다. 미래에 이룩할 수확의 기대에 쏠리는 설레임이다. 어제와 오늘보다 더욱 빛나는 미래가 기약되지 못한다면 축하의 넋두리들은 입술놀음에 불과하다. 설령 '가불'(假拂)이더라도 무방하다. 언젠가 되받을 수 있는 '가불'의 언사만이 축사로서의 적격성을 갖는다.그렇다면 전국언론노조가 미래에 거두어야 할 수확인 무엇인가. 그 과녁은 어디인가. 감히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언론노동자들의 언론노동자다운 '인간의 회복'이다. 근로조건이란 무엇이며, 후생복지란 또 무엇인가. 그 모두가 인간다운 인간의 삶을 위한 조건일 뿐이다. 그 누가 '배부른 돼지'이기를 바랄 것인가. '기름진 노예'가 되기를 원할 것인가.오늘엔 더구나 신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세계화'가 온 지구를 압도한다. 그 먹구름 아래선 어떤 노동자도 인간다운 인간이 되지 못한다. 모두가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락해 간다. 참으로 새록새록 되새겨 지는게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다.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민주주의란 무엇이며, 민주언론이란 또 무엇인가. 잘라 말한다면 그 역시 인간다운 인간의 삶이 딛고 서야 할 땅이며 우러러 숨쉬어야 할 하늘일 뿐이다. 때문에 노동은 끊임없이 복지와 민주의 과녁을 추구한다. 바로 그 가시적인 접점에 자리하는 게 언론노동자 아니던가.솔직히 털어놓고자 한다. 나는 특수성의 지나친 강조에 섣불리 동조하지 못한다. 어떤 직역의 노동만이 온 누리의 온 삶을 구원하고 해방한다고는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언론노동이 그 요체의 하나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정보통신망의 '세계화'는 언론미디어들을, 자본에 이은 '제2의 권력'으로 부상시켜 간다.그로 말미암아 언론의 생산자인 언론노동자는 이중의 목표와 이중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그 첫째는 언론노동자 스스로의 '인간회복'이다. 언론생산자로서의 자존을 잃어버린 현실을 인간의 인간다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둘째는 더불어 사는 모든 이웃들의 '삶의 인간화'이다. 언론노동운동이 민주언론운동을 주종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필연의 이유이다.그러나 한 때, 희망의 깃발로 나부꼈던 언론노동운동과 민주언론운동은 체념의 깃발로 퇴색해간다. 자존을 잃었으므로 무장도 해제된다. '자사이기주의'라는 해괴한 수렁에 빠져드는 것도 필경 다른 이유에서가 아닐 터이다.이제 닻을 올리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산별노조로서의 재무장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재무장인가. 무장의 강화인가. 그 정답을 여기 나열할 필요는 없다. 오로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해주기 바란다. 그리하여 숨을 허덕이는 모든 이웃들에게도 인간의 삶과 희망을 되살려주기 바란다.김중배 언개연 상임대표/ 언론노보 294호(2000.11.24)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