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호]읽으면 행복합니다
2000-11-25 언론노련
임석재의 『한국적 추상 논의』(북하우스)건축과 교수의 20세기 건축물 비평서건축물은 추상이 아니라 구상인 우리의 삶을 담아내야 한다유리와 금속,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서울의 일그러진 공간비평섭섭하게 들리겠지만, 서울은 참으로 멋없는 도시다. 외국의 도시를 여행해보면 그런 생각이 특히 더 하다. 왜 그럴까. 우선 건축물이 멋이 없다. 높이 올릴 줄만 알았지 건물의 개성이 없다. 획일적이어서 답답하다. 게다가 옛 건물의 흔적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숭례문 경복궁 덕수궁이 있다지만 주변의 풍경은 망가져 버린지 이미 오래다. 숭례문에서 덕수궁 지나 경복궁 창덕궁까지 걷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모든 것이 건축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관심이 있었다 해도 그건 인간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건물 자체를 위한 관심이었다. 사람을 위해 건축이 존재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건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건축 교양서의 증가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도 그 중의 하나다. 저자는 왕성한 집필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화여대 건축과의 임석재교수. 이 책은 1990년대 건축물 비평서다. 최근의 건축물에 대한 본격 비평서가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선 신선하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물은 김원의 갤러리 빙, 김기웅의 성북구민회관, 승효상의 동숭동 문화공간, 장세양의 공간 신사옥(이상 서울), 최승원의 오화백 아틀리에(경기 안양) 등 30∼50대 건축가 19인의 작품 27개.그런데 제목이 좀 의아하다. 왜 『한국적 추상 논의』일까. 20세기 특히 1990년대 한국 건축의 주요 흐름을 추상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0년 세운 서울의 갤러리 빙과 성북구민회관이 그 단초라고 보고 90년대 한국건축의 추상성 및 그 허와 실을 설명해나간다. 잠시 설명을 들어보자. 서울 하얏트 호텔 앞의 갤러리 빙의 경우. 기하학적 모양의 외관은 온통 유리와 금속이다. 재료와 모양에서 모두 서구적 추상이다. 그러나 건물은 너무 차가워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최소한의 소통 구멍조차 차단시켜 놓았을 정도로 꽉 닫혀 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건축가의 강한 자의식,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한다. 성북구민회관은 갤러리 빙과는 다른 추상이다. 유리 금속이 아니라 벽돌이라는 전통 재료를 사용해 기하학적인 추상공간을 연출한다. 갤러리 빙이 서구적 추상이라면 성북구민회관은 한국적 추상이다. 그 공간은 한옥이나 서울의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갤러리 빙의 공간이 안으로 움츠려든다면 성북구민회관은 밖으로 열려 있다. 이처럼 두 건축물을 비교해 보여줌으로써,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점은 '인간중심주의'라는 저자의 일관된 시각이다. 건축물이 아무리 추상적이라고 해도 거기엔 사람이 살아야 한다. 삶은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다. 현실을 잘 담아내지 못할 경우, 건축물의 추상은 망가진다. 구상을 담아낼 수 있는 추상, 인간을 담아낼 수 있는 추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령, 쓰레기를 예로 들어 보자. 건물은 쓰레기에 의해 더러워진다. 건축가는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처음부터 쓰레기를 끌어안을 수 있도록 설계해야한다. 이는 건축물이 건축물 자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해 외부로 열려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저자가 건축물과 길 문 주변경치도 함께 논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한국 건축은 건축물 안과 밖의 소통, 건축물과 인간의 조화, 추상과 구상의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소리없이 강조한다. 이 모두가 인간중심주의다. 저자와 함께 하다 보면 건축물을 보는 안목이 하나둘 생겨난다.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다. 책을 읽고 서울 거리에 나서 보라. 서울이 왜 멋없는 도시인지, 왜 망가졌는지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이광표(동아일보 문화부기자) / 언론노보 294호(2000.11.24)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