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호]생활 속에서

2000-12-08     언론노련
국제부 기자로서 미국 대선을 취재하는 것은 행운이다. 일련의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 무너지지 않는 원칙과 기준은 물론 잘 만들어진 톱니바퀴처럼 입법, 사법, 행정부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들어가는 미국식 민주주주의 원동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현 미국의 선거정국을 보면 ‘그래도 역시 미국이다’라는 찬양의 목소리보다는 ‘미국도 별 수 없구나’라는 실망의 목소리가 더 크다.미국은 이번 선거를 통해 다양성의 사회라기보다는 철저하게 이분화된 사회였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지역,성별,인종,종교,연령,소득수준 등에 따라 철저히 나뉘었다.미국의 우월성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양분된 사회지만 물리적 충돌이 없었고 미국인들이 인내를 갖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든다. 그만큼 제도에 대한 법과 제도에 신뢰가 높다는 것이다.반면 우려를 표명하는 학자들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원동력인 원칙과 기본이 흔들렸다면서 신랄히 비판한다. 플로리다주 순회법원과 주 대법원이 개표시한을 연장토록 한 결정이 그 예다. 플로리다주 의회는 이미 오래 전에 ‘개표결과 보고 시한은 선거일로부터 7일 이내로 한다’라고 원칙을 정했다. 그러나 이를 사법부가 뒤집은 것이다. 이는 분명한 입법권 침해다.물론 유권자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수검표를 하자는 민주당 측의 주장이 백번 옳다고 하더라도 이미 입법부가 정한 원칙을 깰 수는 없다. 특히 주 법원이 민주당 인사들로 이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법부도 얼마든지 당리당략에 따라 판결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또한 수검표도 각 카운티마다 다른 기준, 다른 방법으로 행해졌다. 카운티의 선거감독위원회가 어느 정당 사람들로 채워져 있느냐에 따라 수검표 기준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던 것이다.민주주의 성패는 어떤 제도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감히(?) 운영면에서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다. 원칙과 기본이 앞으로도 흔들린다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현재를 정점으로 쇠락을 길을 걸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이 우리에게 거듭 가르쳐준 것이 있다. 이는 지난 4·13 총선에서 보듯 한 표의 소중함이다. 강충식 대한매일 국제부/ 언론노보 295호(2000.12.6)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