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호]읽으면 행복합니다
2000-12-20 언론노조
츠지 히토나리,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정상의 남녀작가가 릴레이식으로 쓴상상력 가득한 연애소설대중적인 이야기 속의여유와 솔직함이 일품참으로 독특하고 기발한 소설 하나를 소개한다. 한 주제를 놓고 남녀 두 작가 릴레이식으로 써내려간 연애 소설이다. 게다가 그 두 사람은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두 소설가. 남자 작가는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츠지 히토나리(41), 여자 작가는 여성 무라카미 하루키로 평가받는 에쿠니 가오리(36)다. 장난기 가득한 것인지, 새로운 상상력의 발로인지 이들은 소설을 쓰기 전 하나의 상황을 설정했다. 그 가정은 이렇다. 이탈리아에 사는 일본인 두 남녀가 대학시절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되었다 서로 헤어지게 된다. 10년 뒤 여자의 생일,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그리곤 두 작가는 이별 이후 남녀 주인공의 인생을 각각 소설로 써나가기 시작했다. 남자 작가 츠지는 남자 주인공 쥰세이의 이야기를, 여자 작가 에쿠니는 여자 주인공 아오이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였다면 그리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다. 두 작가는 소설을 쓰는 방식도 특이하게 정했다. 1997년부터 2년 동안 한 월간지에 교대로 소설을 연재하면서 글을 진행시켜 나간 것이다. 에쿠니가 여자(아오이)의 소설을 한 회 실으면, 그 다음호에 츠지가 남자(쥰세이)의 이야기를 싣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연재가 끝나고 남자의 이야기(Blu), 여자의 이야기(Rosso) 두 권으로 출간되었고 모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이 소설은 문제의 그 소설을 번역한 것이다. 남자이야기는 ‘냉정과 열정 사이―Blu’, 여자의 이야기는 ‘냉정과 열정 사이―Rosso’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이쯤만해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할텐데, 소담출판사는 우리말 번역에 있어서도 화제를 이어갔다. 번역자로 일본 문학 전문번역가인 양억관 김난주 부부로 정했고, 남편은 남자이야기를, 부인은 여자이야기를 번역했다. 이 정도의 배경이야기만 들어도 이 소설은 단연 화제다. 이쯤 해두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 두 남녀 주인공이 과연 소설 속에서 서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10년 후 그들에게 옛사랑의 그림자는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두 작가가 쓴 것인만큼 소설의 결론도 좀 다르다. 어쨌든 10년 후 이들은 다시 만난다. 남자의 이야기에서도 그렇고 여자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거기에 차이가 숨어 있다는 점이 또 재미있게 한다. 남자의 소설에서는 그 뜨거운 재회에도 불구하고 아오이가 다시 떠나가고 잠시 머뭇거리던 쥰세이는 아오이를 쫓아간다. 아오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쥰세이. 여자의 이야기에서, 여자 주인공 아오이는 옛사랑과 뜨거운 재회를 나누었지만 결국 '의존할 것은 자신은 자신'이라고 깨닫고 다시 쥰세이를 떠나간다.어찌 보면 뻔한 연애소설같지만 편하게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어설프게 고상한 척하는 소설 보다는 철저하게 대중과 함께 하려했다는 그 솔직함이 맘에 든다. 사랑을 바라보는 두 남녀의 시각이 같은 듯 다르게 그려진 점도 흥미롭다. 굳이 소설의 결말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 모처럼 여유를 갖고 색다른 연애소설을 읽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소설을 읽으며 혹 옛사랑을 떠올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텐데, 그들의 얼굴 표정이 궁금하다.이광표(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언론노보 296호(2000.12.20)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