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호]생활 속에서-6개월 지나도 사측은 말이없네..

2001-03-07     언론노련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거리곳곳에 잔설이 쌓여 있지만 지나는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은 봄이 사립문 안에 들어왔음을 느끼게 한다. 춥고 힘들었던 겨울은 이제 물러가는가. 중앙일보로부터 떨어져 나온 중앙신문인쇄의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위원장으로 지난해 추석을 길바닥에서 보내고 '해고 아닌 해고'를 당하여 자유인으로 돌아온 나는 15년간의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 긴 휴가(?)를 누리고 있다.회사를 떠난 뒤 느낀 것은 바로 아내의 고마움이다. 집사람 자랑을 하면 팔푼이라고 비난할지 모르나, 역시 홀로 되었을 때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집사람이었다. 그 포용과 침묵. 장모님이 집사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독일에 간호사로 일하고 있어서 처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덕분에 그동안 부부 싸움을 해도 처가로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작년 11월에 장인어른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내는 고민에 빠졌다. 장인어른을 우리나라로 모실 생각도 했지만 거동이 힘들고, 아들 둘과 나를 두고 떠나자니 생활에 어려움이 있겠고…. 나는 아내를 독일로 떠나 보냈다. 아내가 반찬을 가득 만들어 놓고 갔지만, 매일 아침 두 아들 도시락 싸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큰 아이는 빵 종류의 음식도 상관없는데 작은 아이는 우리나라 토종인지 꼭 국하고 밥을 찾으니 반찬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빨래 역시 세탁기가 다 해주는데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3주 뒤 장인어른은 숨을 거뒀고 장모님과 아내는 돌아왔다. 그동안 집안 살림의 어려움을 알았으니 틈틈이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아내를 도와 주리라 다짐했던 스스로의 약속을 나는 조금씩 지키고 있다. 또 한가지 아내가 기뻐하는 기독교 신자가 된지 벌써 한 달.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일은 뭐든지 열심히 하려 한다. 우리는 부부가 서로 하루종일 마주보며 청소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 집안이 너무 깨끗하다.실업급여의 혜택을 받은 지 벌써 6개월, 추석에 시작하여 설이지나 봄이 되었다. 아내의 사랑은 너무 깊이 확인되었고, 나도 이제 일터로 나가야 하는데…. 사측은 "조속한 복직" 약속 이후 말이 없다. 조남영 중앙신문인쇄 전위원장/ 언론노보 301호(2001.3.7)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