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호]읽으면 행복합니다

2001-06-27     언론노련
이덕일의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아마 잠시 현대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일제시대 몇몇 시인들의 작품에서 아나키즘의 흔적을 발견하면서였던 나는 아나키즘, 아나키스트란 단어의 매력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일제시대 당시의 그 절대 억압 속에서, 일체의 억압을 거부하고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혁명을 갈망했던 젊은 그들의 고뇌와 방황. 그 아나키즘의 매력이 나를 사로 잡았던 것이다. 여기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이 있다. 그러나 나는 독립운동가 이회영보다 아나키스트 이회영을 더 좋아한다. 독립운동가 신채호보다 아나키스트 신채호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아나키스트로서의 이회영을 조명하고 있다. 이회영. 신민회 창설, 신흥무관학교 설립, 항일구국동맹 결성 등 한국사에 길이 남는 항일무장독립운동가. 조선 제일의 명문가 출신으로, 국권 상실 직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일가 형제 40여명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고 가산을 정리한 40만원의 거금을 항일투쟁에 헌정한 인물. 대한민국 초대부통령이었던 이시영(李始榮)의 형….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졌던 그가 아니키스트였다니. 그것도 1923년 무렵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민족주의에서 아나키스트로 일대 개종을 감행했다니. 1923년은 바로 신채호가 아나키즘 색채가 농후한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했던 해가 아닌가. 이회영은 이후 신채호 등과 함께 젊은 아나키스트들을 후원하며 의열단 다물단 등의 무장투쟁을 지원했다. 그리고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항일구국동맹을 결성했다. 이회영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독립운동이란 독립운동하는 자들의 자유합의에 의해 해방과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강제나 억압도 용납될 수 없다. 아나키즘의 궁극 목적은 자유연합적인 대동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각 민족 단위의 독립된 사회가 완전히 독립적인 주권을 지니되 다른 사회와 관계된 문제나 공동의 과제에 대해서는 연합적인 세계기구가 토의 결정하여 실행해 나가야 하리라.' 바로 이런 생각으로 그는아나키스트가 되었던 것이다. 이회영이 상하이 임시정부 출범 당시 대세에 맞서 정부의 조직화를 반대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 점에서 이회영은 어쩌면 체질적으로 아나키스트였을지도 모른다. 자유를 갈망했지만 그의 최후는 처절하게 억압적이었다. 1932년 만주 주둔 일본군 사령관을 암살할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다롄으로 가는 길에 밀정의 고발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중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니. 이회영처럼 일제시대 우리 아나키스트들의 최후는 대개 비극적이었다. 아나키즘은 권력을 거부하고 공동체주의를 추구한다. 어떤 규정된 틀을 거부한다. 권력화나 조직화를 지향하지 않는다. 또한 절대 진리를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하고 쓰러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유토피아는 완성되는 순간 곧 닫힌 유토피아로 변질한다는 믿음에서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다소간 낭만적이긴 하다. 이회영이 체질적으로 아나키스트였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생각 역시 낭만적인 발상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 낭만이 좋다. 그래서 신채호가 좋고 이회영이 좋다. 나아가 이 책까지.하지만, "누구도 억압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억압당하지 않겠다"는 이회영의 말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 시대. 그건 결코 낭만이 아니다.- 이광표(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언론노보 308호(2001.6.27)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