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
- 2025-08-07 17:40:51
[방송작가지부 성명]
새 정부의 방송사 근로감독을 환영하며
-근로감독은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지난 7월30일. 고용노동부는 지상파 2사(KBS, SBS)와 종편 4사(JTBC, MBN, TV조선, 채널A) 에 대한 기획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이번 근로감독을 통해 방송업계 인력 운영 방식 및 노동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게 새 정부의 계획이다. 노동자 출신의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의지를 갖고 나서는 이번 기획감독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이하 지부)는 환영의 뜻을 전한다.
그런데 지부는 2021년 지상파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근로감독의 대상 중 152명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지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고작 18명에 불과하다.
무기계약직이 되어 방송국의 직원이 된 18명의 작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작가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까.
MBC는 작가들을 ‘방송지원직’이라는 이름의 직군을 따로 만들어 배속시켰다. ‘방송지원직’은 기존 직원들(기자 및 PD)보다 낮은 처우를 받는 직군으로 연봉, 인사평가, 업무 배치 등에서 차별 받고 있다. MBC가 ‘방송지원직’을 신설하고 무기계약작가들을 별도의 취업규칙을 만들어 적용시킨 것은 시정조치 이행했다는 면피를 획득하고자 저지른 편법에 불과하다. SBS도 작가들을 ‘별정직’이라는 직군으로 소속시켰다.
KBS는 더 가관이다. KBS는 무기계약직 대상 작가들에게 ‘방송지원직’이라는 이름의 ‘행정직’을 들이밀며 더 이상 구성과 집필과 같은 방송작가 업무는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작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행정직’을 선택했다. 방송작가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 작가들은 KBS를 떠나거나, KBS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다시 프리랜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작가로 근로감독 받았고 방송작가로 노동자성 인정받았는데 방송작가를 포기하라는 것이 제대로 된 시정조치인가. KBS는 고용노동부가 시행한 2021년 근로감독의 취지와 목적을 대놓고 무시해버린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KBS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2021년 방송작가 근로감독은 나쁜 방향으로 번졌다. 서울 중앙에서 근로감독이 이뤄지고 있으니 3사와 연관된 지역사는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노심초사하며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회피했다. 사내 작가실을 폐쇄하거나 작가 자리를 없애거나 업무 지시와 지휘 감독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카톡방을 금지시켰다. 본사 작가의 임금 지급을 외주사에게 맡기려는 시도도 있었다. 직접 고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러니 지역사 작가들 사이에서는 서울의 근로감독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는 푸념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 사건으로 진행된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이야기 안 할 수 없다. 괴롭힘은 있었으나 노동자는 아니라는 해괴한 판정에 비정규/프리랜서 방송 노동자들은 또 한 번 좌절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하나마나 근로감독. 이제 여기서 멈춰야 한다. 새 정부, 새 시대의 방송 노동 환경은 그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는 고용노동부에 요구한다.
1. 노동자성 판단의 핵심은 방송사의 지휘/감독 여부다.
소속 부서가 다르고, 담당 프로그램이 다르고, 맡은 업무가 다르다고 해도 모두 방송사의 기획 아래에 움직인다.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 근속 연수가 다르고, 업무가 강도가 달라도 모두 방송사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 방송사는 오래 전부터 밀도 있게 노동자들을 감독하고, 지시하고, 수정하고, 확인했다. 프리랜서/비정규직 노동자도 이 관리 감독 아래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예능과 라디오. 지역사와 보도전문채널. 정부 산하 방송사. 그리고 외주제작사까지. 근로감독의 대상 범위를 넓혀야 한다.
방송작가지부는 이번 기획감독에 종편4사가 포함된 것을 환영한다. 종편4사도 대한민국 주요 방송사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관리 감독의 바깥에서 프리랜서/비정규직 인력을 운영해왔다.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성이 짙은 인력을 프리랜서처럼 위장하여 고용하는 것은 전국 어느 방송 제작 환경이나 마찬가지다. 예능과 라디오. 지역사와 보도전문채널. 정부 산하 방송사. 그리고 외주제작사까지 감독과 개선이 필요하다.
3. 근로감독 이후가 더 중요하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 이후 방송사에게 시정조치 이행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어길 시 강력히 처벌하라.
방송작가를 행정직으로 배속한 KBS. 이는 집필하고 구성하는 방송작가는 결코 KBS 직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특정 직군을 배제하는 명백한 차별 행위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4. 근로감독 이후 시정조치 이행 단계에서 정부와 방송사는 노동단체와 충분히 협의하라.
지난 2021년 근로감독에서 작가들은 프리랜서로 남을 것인지 방송사의 직원이 될지 홀로 고민해야 했다. 난생 처음 겪는 근로감독과 이후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선택지 앞에서 개인의 선택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단체가 필요하다. 근로감독의 취지에 맞게 시정조치가 완료 되고, 제대로 된 고용 문화가 방송업계 전반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노동단체와의 긴밀한 협의는 필요조건이다.
끝으로, 이번 근로감독의 대상 방송사에 요구한다.
방송사는 고용노동부에 적극 협조하라. 어떤 부서에 프리랜서 누가 근무하는지 숨김없이 공개하라. 노동자가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근로감독을 받도록 배려하라. 근로감독을 받는 것 또한 노동자의 권리다. 노동자 권리를 위해 벌어지는 근로감독에서 오히려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지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2025년 8월 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