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궁궐의 우리 나무』(눌와)요즘 나는 이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어느 분야에서건 어느 직종에서건, 남들 하지 않는 일 하는 사람. 남들이 무심하게 취급하는 일에 매달리는, 그런 사람 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엔 문화재 포장 전문가가 한 분 있다. 한눈 팔지 않고 평생 문화재만 포장해 온 사람. 그 결과, 그는 한국 최고의 문화재 포장 전문가가 되었다. 문화재 대여 전시가 빈번한 요즘, 그의 존재는 더욱 값지다. 그가 없으면 대한민국 국보는 마음 놓고 이동할 수가 없다. 얼마나 멋진 삶인가.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의 저자가 그런 사람이다. 나무세포를 연구하는 임학자. 그러다 우연히 나무 문화재를 접하고 그것에 빠져들어 끝내 '목질문화재 연구'라는 새로운 장르의 학문 분야를 만들어낸 사람, 박상진 경북대교수. 특히 문화재 분야에서 그의 존재는 무척 값지다. 문화재 연구의 폭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화재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도 무심히 취급했던 게 나무다. 거창한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던 현실. 그러나 박교수는 묵묵히 나무 조각을 통해 과거 역사의 신비를 풀어왔다.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일본 교토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그곳에서 연수 중인 미술사학자 강우방 이화여대교수와의 우연한 만남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하루 이틀, 강교수를 만나 문화재 얘기 주고 받기를 1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목질문화재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27년. 그가 다룬 나무 조각은 작았지만 그가 풀어낸 역사는 대단하다. 그의 최고 업적의 하나는 1991년, 공주 무령왕릉 목관의 재질이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金松)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백제 무령왕릉 발굴 20년만에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또 있다. 팔만대장경판의 60%가 산벚나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동안엔 팔만대장경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무령왕릉도 그렇고 팔만대장경도 그렇고, 그가 밝혀낸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고, 무령왕릉 팔만대장경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나무 전문가의 눈으로 문화재를 들여다 본다는 것이 역사 연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이번에 소개할 『궁궐의 우리 나무』는 박교수의 나무 사랑, 문화재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귀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제목처럼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서울의 궁궐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소개했다. 하지만 단순한 나무 소개서가 아니다. 나무에 대한 생물학적 정보는 물론이고 각각의 나무에 숨겨진 역사적 문화적 이야기 그리고 궁궐과의 인연 등등을 쉽게 풀어놓았다. 물푸레나무가 곤장으로 사용된 사연이며 배나무와 이성계, 모과와 광해군, 백송과 대원군, 버드나무와 사약 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재미 또한 무궁무진하다.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수십종의 사서에 들어있는 나무에 관한 내용을 샅샅이 뒤져 이 책에 함께 담고 각 궁궐에 자라고 있는 나무를 일일이 확인해 지도로 만들었을 만큼 박교수의 정성도 대단하다. 박교수와 편집자가 3년에 걸쳐 찍은 사진, 한 쪽 한 쪽 정성이 묻어나는 예쁜 편집도 정말 매력적이다. 이처럼 흥미롭고 아름다운 궁궐 안내서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 책과 함께 고궁 나들이를 나선다면 멋진 가을이 될 것이다. 이광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언론노보 313호(2001.9.26)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