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결핵으로 두 달 정도 병원신세를 지고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다. 몸에 특별한 흔적이 없어 병원에 있으면서도 환자인 것이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죽어나가는 사람도 봤고 나 또한 피를 토하고 입원했으니 환자인 것은 분명하다. 폐에서 터지듯이 잔기침에 섞여 넘어와 입안에 고이는 흐물흐물한 피. 그 비릿한 맛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잠자리에 기침이라도 나면 또 토하나 두렵기까지 하다. 산낙지에 소주, 커피에 담배 생각에 침을 꼴칵 삼키지만 밥 먹을 때마다 먹는 약을 보며 참곤 한다. 몸이 조금 나아졌다고 어쩌다 담배에 손이 가곤 하는데 이마저도 끊어야 할 터인데……병으로 아파서 쉬는 동안에 잃고 살았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낮에도 눈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낮에 눈을 찌푸리지 않는 것이 무슨 특별한 행복일까 우습기도 하지만 나에겐 많은 시간과 훈련이 필요한 결과이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아주 훌륭한(?) 근로조건이지만 밤에만 일을 하니 햇볕 볼 시간이 없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언제부턴지 낮에는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다. 온몸으로 받아도 시원찮을 봄볕에서도 눈이 부시니 말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 해나면 움직이고 해지면 쉬는 생활이 한 달 정도 지나고 햇볕 날 때마다 볕을 쏘인 결과이다. 덕분에 지금은 우리 딸아이와 한낮에 놀아도 눈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백승원…… 37개월 되었는데 아이 생각만 하면 가슴 한구석이 찡하다. 밤에만 일하는 덕에 많이 안아주지도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돌 사진도 못 찍어줬다. 자라서 사진 내놓으라면 뭐라 해야할지 걱정이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나를 따르지 않아 미안했는데 쉬는 동안 딸아이에게 많은 뇌물을 쏟고 서야 조금은 친하게 되었다. 과자도 함께 사고 노는 것도 함께 놀고 밤이면 동화책 읽어주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도 제법 안기고 따르는 편이다. 방안에서 같이 뒹굴며 온방을 어지럽혀도 우리 복자씨는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가족에게 헌신봉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고 있다. 다만, 그 대가가 병가인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백재웅 동아신문인쇄지부 교육부장/ 언론노보 313호(2001.9.2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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