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역에 익명의 테러가 가해진지 정확히 4분 뒤, CNN은 연기에 뒤덮인 WTC를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CNN의 신속함에 놀라며 그들이 제공하는 화면을 통해, 미국의 눈으로 테러를 이해해야 했다.뉴욕과 워싱턴은 그 누구도 침공할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미 본토', 그 중에서도 핵심 도시였다. 월가에 위치한 세계자본의 자존심은 무너졌고, 그 자존심을 재생산하던 언론의 역할은 의심받았다. 언론은 전쟁을 선택했고 CNN 스페셜 리포트의 제목은 에서 로 교체됐다.미국 언론이 국가·자본과 유착해 왔다는 혐의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98년, 한달간의 취재 끝에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사린 신경가스를 사용했다는 보도를 했던 CNN의 올리버와 스미스 기자는 정부와 사측의 압력으로 해고당했다.이에 앞선 64년, 워싱턴포스트는 '베트남 통킹만에서 미 해군이 이유 없이 두차례 공격당했다'고 대서특필했고 이틀 뒤 미의회는 전쟁을 결의했다. 그러나 오보였다. 미 해군이 먼저 도발해 북베트남과의 충돌을 빚었으며, 공격은 한차례에 그쳤다.CNN은 걸프만 보도를 통해 전쟁을 피와 죽음의 현장이 아닌 한편의 게임처럼 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걸프전 이후 미국인들에게 전쟁은 기계가 치르는 한판 대리전이 되었지만, 무고한 이라크인들에게 전쟁은 폭격보다 무서운 '외면'까지 감당해야 하는 악몽이 됐다.미군들이 개선하던 날, 언론은 거리에 나와 종이꽃을 뿌리며 환호하는 모습을 전세계에 타전했다. 낡은 군복을 입은 노인은 성조기를 흔들며 'USA'를 연호했고, 아이를 안고 나온 여인은 미국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그러나 같은 시간, 이라크인들의 아픔을 주목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장과 병원, 학교까지 잔해만 남은 그곳에서 어린이들은 국가를 부를 힘도 없었다. 아이를 업은 어머니들은 폐허가 된 집 앞에서 암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찾아야 했다. 언론은 어느덧 전쟁의 수혜자가 됐다. '전쟁을 중계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변명은 많았지만, '전쟁을 상업화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외면했다'는 지적에 대한 대답은 많지 않았다. 이제 아메리칸 지하드는 임박해 있다.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오는데 일조 했던 미국 언론들은, 또다시 피침략국 국민들의 죽음과 파괴된 삶을 외면한 채 '제국의 승리'를 연일 노래할 것인가. 언론이 져야할 전쟁의 책임은 크다. / 언론노보 313호(2001.9.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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