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밤 미국 심장부를 강타한 항공기 테러는 미국 중심주의, 외신 베끼기, 무리한 추측 보도, 피해 규모 부풀리기 등 국제문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맹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사건의 충격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한겨레와 경향 등을 중심으로 자성론이 확산돼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여전히 선정보도와 왜곡보도가 계속되고 있는데다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이 시작되면 또다시 재연될 소지가 다분하다.민실위는 이미 여러 단체의 모니터 보고서나 대안언론에서 지적하기는 했으나 사안의 중대성과 재발 가능성을 감안해 미국 테러참사 보도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주의를 환기하고 공정보도를 다짐하기로 했다.가장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미국 중심주의 보도. 신문들은 AP와 미국 유력지들을 베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 보도로 일관해 `미국 신문보다 더 호들갑을 떨었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미국내 신중론은 물론 유럽과 남미, 중동 등 다른 지역의 여론을 균형있게 전달하는 데 인색했고 우리 시각으로 여과해 보도하려는 자세도 실종됐다. 특파원 부족과 마감 시간 등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게이트 키퍼라는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를 망각한 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외신을 여과없이 전재하다보니 추측성 보도도 남발됐고 오보도 속출했다. 사건 직후 신문들은 `뉴욕서 최소 1만명 사망'(문화 12일ㆍ세계 13일), `충돌 때 건물 안에 2만여명'(경향 13일), `무역센터서만 1만명 희생된 듯'(동아 13일) 등의 제목을 달아 보도했으나 21일 현재 미국이 집계한 희생자는 무역센터 사망자 241명과 실종자 6천333명 등 모두 7천명 선으로 알려졌다.또한 사진까지 실은 테러범 용의자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환호성을 올렸다는 보도도 CNN이 91년 화면을 잘못 내보냄에 따라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과장보도와 오보에 대해 미국 언론은 정정과 함께 사과의 글을 게재했으나 우리 언론은 일언반구 해명도 없다는 것이다. 미국 테러를 진주만 공습에 비유하며 전쟁 발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거나 서방세계와 이슬람과의 문명충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식의 기사도 전형적인 부풀리기 보도로 지적된다.비록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일부 담기는 했으나 도상작전 시나리오와 미국의 신무기 및 특수부대까지 소개하며 마치 대규모 전쟁이 곧 벌어질 것처럼 지면을 꾸민 것은 `전쟁 부추기기'라는 비난을 샀다.조선의 14일자 만물상와 15일자 류근일 칼럼, 동아의 13일자 사설 등은 노골적으로 보복전의 정당성을 주장했으며 9월 24일 연합뉴스는 '아프간 보복공격 걸프전 비해 볼거리 적을 듯'이라는 제목으로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인용 보도해 항의를 받기도 했다.21일자 조선이 `북, 빈 라덴 테러조직과 연계 유지'라는 제목으로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비친 기사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가정한 뒤 햇볕정책을 공격한 사설을 실은 것도 남북한 대결을 조장하는 편향보도 사례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