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에게 전쟁은 첨단무기의 경연장이며 섬광이 번쩍이는 컴퓨터 오락처럼 묘사된다.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고 악이 징벌 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무고한 죽음과 파괴의 참혹한 현실은 신문지면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전쟁보도의 상업적 이용에 골몰하는 모습이다.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군사목표물만 타격 한다고 말하지만 과거 걸프전에서 보았듯이 일반 시민들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우리 언론들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미국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말만 하고 있다. 주요 신문들은 9일자 사설을 통해 "이번 전쟁은 미국의 불가피한 선택(중앙일보)"이며 "당연한 응징(동아일보)"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국의 공격을 받는 대상은 "문명세계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심만 표출하는 테러집단(조선일보)"으로 간주된다. 신문들은 이렇게 선악을 갈라놓고 전쟁의 정당성을 찾는다. 미국을 지원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도덕적 책무(중앙일보)"로 까지 미화된다. 또 이들은 "큰 성과를 거둬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바란다(동아일보)"면서 전쟁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겨레만이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진행된다면 결코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해 다른 자세를 취했다. 모든 신문들은 전쟁이 제한적이고 단기간에 끝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살상되는 비극적 현실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이는 1면의 대형 사진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공습 첫날인 8일자에 신문들은 카불이 공습 받는 상황을 '한밤의 불꽃놀이'처럼 담아낸 사진을 게재했다. 이튿날에는 한결같이 미국 전투기 발진과 미사일 발사장면으로 1면을 장식했다. 다음날 공습피해 사진으로 카불의 건물잔해를 실었지만 전장의 참상을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지면에서도 공습으로 죽은 사람이나 부상자들의 사진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대부분 전날과 마찬가지로 미군 전투기나 미사일사진으로 채워졌다. 특히 한국일보는 연이틀째 미국의 공습준비 사진을 1면에 실었고 조선일보의 경우 공습피해사진을 단 한 장도 싣지 않았다. 서방매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보도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사실보도의 고민이 적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신문들은 이 전쟁에 대해 미국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일반 국민들의 여론은 짐짓 모른 척하고 있다. 주요 신문들은 큰 이슈가 생길 때마다 단골로 등장시키던 시민반응이나 여론조사보도를 하지 않았다. 경향신문 한겨레 대한매일이 전쟁보다 평화를 원하고 빨리 종전이 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표정을 보도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300여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반전을 주장하는 성명을 내고 행사를 가졌지만 일부 신문(한국,경향,한겨레,대한매일)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신문들은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 신문의 보도가 얼마나 왜곡되었는가를 반증하는 사례다.전쟁은 비극이다. 오락물로서의 영화나 소설이 '불 구경'의 흥미성을 추구하지만 전쟁의 본질은 대규모 민간인 살상과 대량파괴가 뒤따르는 반문명의 극치다. 우리 언론의 전쟁보도가 불 구경하듯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