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 <봄날은 간다>조진규 감독 <조폭 마누라>세속적 코미디와진지한 드라마무엇이 악화이고무엇이 양화인가영원한 영화의 숙제영화는 정적인 작품과 동적인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무게중심을 삶에 대한 조명에 두느냐, 재미 위주의 액션에 맞추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구성과 기법이 달라진다. '봄날은 간다' '조폭 마누라'. 요즘 주목받고 있는 우리영화다. '봄날은 간다'는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 '조폭 마누라'는 조폭인 여자의 삶을 다룬 코믹액션극이다. 소재와 장르에서 알 수 있듯 두 영화는 확실히 다르다. '봄날은 간다'는 숫총각 녹음기사(유지태)와 이혼녀인 라디오 PD(이영애)의 사랑과 이별을 그렸다. 두 남녀는 방송용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러 떠난 길에 연인이 된다. 그리고 남남이 된다. 이 과정을 죽림·개울·절·바다·보리밭 소리, 눈오는 소리, 라면 먹는 소리, 발자국 소리 등에 녹여놓았다.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다. 불특정 다수의 경험담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소문?shy; 비빔밥집이나 그렇지 않은 집이나 재료는 같지만 맛이 차이가 나듯 '봄날은 간다'는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비벼냈다.옛사랑의 추억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러닝 타임 106분에 총 컷(Cut)이 180컷에 지나지 않는다. 한 영화의 평균 컷이 600∼700컷 정도인 데서 알 수 있듯 '봄날은 간다'는 이야기 전개가 느리다. 반면 남녀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상황과 인물의 심리변화, 자연의 소리 등에 대한 풍부한 디테일로 시종 화면을 응시하게 만든다.'봄날은 간다'는 화사한 봄날은, 좋은 시절은,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지나간다는 의미를 지녔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녹음기사의 대사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로 주목받은 허진호 감독이 연출했다. '조폭 마누라'. 조폭의 마누라가 아니다. 마누라가 조폭이다. 그는 한 조직의 2인자인 은진(신은경)이다. 은진은 수소문 끝에 어릴 때 고아원에서 헤어졌던 언니(이응경)와 해후한다. 그런데 언니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언니의 소원은 동생의 결혼과 출산. 결혼? 임신? 은진은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두 인륜지대사를 언니를 위해 서둘러 감행한다. 남편은 어수룩한 수일(박상면)이다.이 영화는 러닝타임 110분에 1,200여 컷으로 이뤄져 있다. 액션과 코미디를 엮은 이야기가 번갈아 숨가쁘게 전개된다. 은진과 수일의 맞선·결혼·임신 과정은 원초적 웃음 퍼레이이드를 펼친다. 은진 졸개(안재모·김인권·심원철)와 동네 양아치들이 치르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 은진 일당이 라이벌 백상어(장세진)파와 벌이는 액션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일본 와세다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조진규 감독의 데뷔작이다.두 영화의 대조적인 흥행결과를 놓고 충무로에서 말들이 많다.'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했다'는 말조차 나돈다. '조폭 마누라'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삼류 코미디, '봄날은 간다'는 우리네 삶을 반추하게 해주는 일급 드라마인데 관객들이 '조폭 마누라'에 몰리는 바람에 '봄날은 간다'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조폭 마누라'는 악화인가? '조폭 마누라'는 약 두 시간 동안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게 해주는 오락성을 지녔다. 영화에서 '재미' 외에 무얼 더 바라느냐는 관점에서 보면 '조폭 마누라' 만한 양화도 드물다. 재미를 우선으로 하는 동적인 영화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정적인 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영화가 계속되는 한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언론노보 314호(2001.10.17)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