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 1년을 돌아보며 <3> 직종을 넘어서자초기 유럽노조 직종별 폐쇄성으로 자멸의 길인력과 자원 낭비...대통합 힘의 집중이 살길우리 사회에는 숱한 민간단체가 만들어져 나름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종교단체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 단체는 대부분 1980년대 후반 민주화 공간에서 설립되었습니다. 『한국민간단체총람』(시민의신문사 발행)에 수록된 단체만도 8,000여 개에 이르며 지부를 포함하면 2만여 개가 넘습니다. 이 자체가 한국 사회 다양성의 반영이며 자본주의 발달과정이 선진 자본주의에 근접했다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들 단체 중 1960∼70년대 만들어진 단체들은 대부분 특정 직종의 이익집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의약분업 문제로 파업 이상의 단체행동을 보였던 의사협회나 약사협회, 그리고 변호사협회, 교총 등이 대표적인 단체입니다. 언론 쪽에는 기자협회, PD협회 등이 있습니다. 직종별협회는 많은 부분 노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실제 그 기원도 서구의 직종별노조(Craft Union)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수노조를 반대합니다. 무엇보다도 교수노조는 직종별노조(craft union)를 부추길 가능성이 큽니다. 교수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전문직종입니다. 교수노조가 되면 의사노조, 변호사노조, 약사노조도 가능하지요. 언론은 어떻습니까. 기자노조, PD노조, 윤전노조, 작가노조, 아나운서노조…. 직종별 이해에 따라 숱한 노조가 생겨나고 이들 노조는 자기 기득권에 집착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 방송사에, 신문사에 여러 개의 직종별 노조가 있으면 노노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고 사용자는 노동자 분할정책(Divide and Rule)으로 표정관리 합니다. 이것은 백여 년 전 유럽 노동운동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자본주의 초기 노동조합 건설을 주도한 사람들은 인쇄공, 석공, 시계공, 제화공 등의 기술이 뛰어난 수공업 직인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이들은 대학교수급이었습니다. 당시의 노동자는 숙련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거의 평생이 걸리고도 했다), 일하는 모습도 지금의 노동자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일주일에 4일 정도만 일할 정도로 큰 소리 치며 일했습니다(식민지경제가 상품의 수요를 전 세계적으로 창출하였으나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일손은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그들은 도시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날품팔이 대중('노틀담의 곱추'나 '왕자와 거지' 등에 등장하는 이리 쏠리고 저리 몰려다니는 무리)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었습니다. 바로 이들 숙련 직인들이 노동조합 건설을 주도함에 따라 노동조합 조합원의 범위는 숙련공에만 한정되었고, 숙련공만의 노동조합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치며 기계제대공업이 발달하고 자동화시스템이 도입되자 이제 더 이상 소수의 노동자와 간단한 기계를 기초로 생산을 행하던 수공업적 방식은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우리가 아는 '기계파괴운동'은 이에 대한 특권층 수공업적 노동자의 저항. 당시 기계를 파괴했던 노동자는 결코 헐벗고 굶주린 노동자 대중이 아니었다). 반숙련, 미숙련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가 급속도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숙련공 중심의 직종별노조는 노동자의 다수를 점하게 된 미숙련노동자와 여성노동자를 조직하는데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했고, 많은 경우에는 이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심한 경우 직종별노조는 일반 노동자의 조직이 아니라 특혜 받는 노동귀족층의 조직으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직종별노조로는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화학공업과 독점대기업의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노동운동가들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운동이념과 조직형태를 추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산별노조입니다. 산별노조는 직종별노조가 조직의 내적 구성이 갖는 제약에 의해 다양한 노동자를 조직하지 못하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 조직적 대안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대규모사업장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노조는 특권화 하고 있지는 않은 지, 전체 노동자의 53%를 넘어선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는 어떻게 할 것인 지, 이의 극복을 위해 갓 태동한 산별노조는 여전히 기업별활동의 철벽에 막혀 있지는 않는 지 등의 문제가 우리 앞에 가로 놓여 있습니다. 그 속에 직종별협회, 직종별노조의 함정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교수는 전교조로 합류하면 됩니다. 사소한 문제와 불편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극복해야 된다고 봅니다. 교총도 마찬가집니다. 언론계의 각종 직능별협회도 발전적인 해소를 고민해야 된다고 봅니다. 비슷한 활동을 하는데 왜 곳곳에 조합비며 회비를 내야 하는 지, 각각의 사무실과 인원은 중복과 낭비가 아닌 지, 그걸 하나로 모아 힘의 집중을 이뤄낼 수는 없는 지 등이 진지하게 검토돼야 할 것입니다. 대통합으로 가는 길, 그것이 우리 속의 언론개혁일 수도 있습니다.박강호(언론노조 부위원장)/ 언론노보 314호(2001.10.1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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