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후배와 자식들에게 의 사원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겠다"초창기 <언론노보>를 뒤지다, 1990년 4월13일 발간된 '호외'에서 눈에 띈 이 말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오늘날 '한국방송 본부' 조합원들이 겪고 있을 자괴와 낭패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KBS 노동자들의 이 '10년 전의 자랑'이 현재의 '구겨진 자존심'과 선명하게 대비됐다. 같은 언론 노동자로서, 마치 내 자신의 아픔인 듯 했다.이 말은 1990년 4월 12일 백골단 5백명이 한국방송공사에 난입했을 때 한 조합원이 밝힌 것이다. 당시 한국방송 노조는, 5공 창출에 관여한 서기원씨가 '관제 사장'에 임명되자 그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에 나섰다. <한국방송> 조합원들이 이런 4·12폭력에 굴하지 않자, 경찰은 같은 달 30일 방송공사 건물 안으로 진입해 농성 중이던 조합원들을 강제로 해산하고 10여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당시 조합원들의 고백대로 그 아픔은 그대로 한국방송 노조의 자랑이었다.필자가 <언론노보>를 뒤진 것은 이 자랑을 한데 나눈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즈음 어느 때라고 기억되는데, 언론노동자들은 서울 시내에서 집회를 한 뒤 서울역 뒤편 만리재를 넘어 여의도 KBS 앞까지 행진을 했다.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 안됐던 필자도 그 속에 끼어 KBS 건물 앞까지 간 뒤 "언론자유 만세"를 외쳤다. 노조 깃발 아래 울렸던 그 외침은, '정권의 나팔수'라는 치욕을 씻어버리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 뒤에도 10여년 동안 언론개혁 투쟁에서 <한국방송> 노조의 깃발이 언제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필자는 기억한다.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그 뜨거웠던 '6월 총력투쟁' 때도 본부 깃발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 자유"를 외쳤던 본사 앞마당은 여성단체들의 항의시위 장소가 돼 버렸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각각 '창립기념일 선물 선정 압력'과 '성폭행'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일은 갓 출범한 언론노조에도 커다란 아픔을 주었다. 전체 조합원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KBS 본부의 '사고'는 산별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어버렸다. 산별노조는 출범 때 "재정과 인원을 중앙에 집중시켜 지역의 열악한 노조를 돕고 언론개혁을 앞당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KBS의 분담금 미납 등 사태를 맞으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없었다.한국방송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오랫동안 노조활동을 해왔던 이들이라는 점에서, 이 혼란은 지속되면 될수록 KBS 노조의 '자랑'과 '자존심'을 깎아먹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따라서 이런 혼란을 해결하는 주체는 바로 KBS 조합원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이미 지난 4월 탄핵투표에서 62.2%가 탄핵에 찬성함으로써 이들에게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생각한다.하반기에 계속될 언론개혁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한국방송> 본부 노조 깃발을 보고 싶다. 그 깃발과 함께 휘날릴 한국방송 노동자들의 자존심과 자랑을 보고 싶다.김보근 한겨레신문지부위원장/ 언론노보 314호(2001.10.1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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