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했다. 서슬 시퍼렇던 박정희 군사독재와 맞섰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내부에 독재가 형성돼 갔다. 그렇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해 없기 바란다. 그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동량-정치인으로 관료로 경영자로-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나에게 대든단 말인가. 내가 사장인데서 노조라니…. 나는 절대선이다. N신문의 장 모 씨며 K방송의 박 모 사장을 보라. 다시 우리의 일상도 돌아보자. 노조 창립기념식은 어떤가. 판에 박은 축사와 기념사, 연대사. 참석해주신 누구누구에 감사 드리며 자기 조직이나 위원장 개인의 자랑이 이어지고 몇 번씩 계속되는 마지막으로…를 넘어 기념사는 끝난다. 어떤 데는 기념사만 십분 이십분을 넘기는 데도 있다. 이건 기념사가 아니라 숫제 강연이다. 고문도 이런 고문은 없다. 음식은 차려놓고…. 언론노조 중앙위원회나 대의원회는 어떤가. 두꺼운 회의자료에다 긴 설명, 말 잘하는 몇 명의 발언, 그리고 끝이다. 제주에서 부산에서 올라온 대표들은 그냥 앉아 있다 손 몇 번 들고 간다. 최 위원장은 회의 진행을 하며 참담함에 죄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도 모르게 길들여진 권위주의의 폐해다. 98년 9월, 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련 사무실은 내내 청소 중이었다. 칸막이를 없앴고 위원장 자리를 가로막고 있던 책장도 치웠다. 그 결과 연맹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위원장 얼굴이 바로 보이게 됐다. 노동조합 사무실은 이래야 된다며 신임 위원장이 첫 번째 한 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맞다. 노동조합의 문턱 낮추기, 이로부터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 권위(權威), 진정한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겸손이다. 자신을 내세우고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권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그로부터 권위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노동조합도 위원장도 간부도 그 시작은 여기에 있다. 우리 속의 야만, 일상의 파시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자. 노동조합 임원 교체가 한창이다./ 언론노보 315호(2001.11.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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