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우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조선시대엔 의궤(儀軌)라는 것이 있었다. 국가에서 거행하는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숙종의 장례에 관한 기록인 『숙종국장도감의궤(肅宗國葬都監儀軌)』,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의 결혼식 장면을 담은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昭顯世子嘉禮都監儀軌)』, 고종의 초상화 제작과정을 기록한 『어진도사도감의궤(御眞圖寫都監儀軌)』, 중국 사신의 영접 상황을 기록한 『영접도감사제청의궤(迎接都監賜祭廳儀軌)』, 영조가 활쏘기를 베푼 후의 상황과 시상 과정을 기록한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국왕 혼인, 세자 책봉, 왕실 장례, 궁궐 건축, 중국 사신 영접 등 국가 행사에 관한 모든 정보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들 의궤를 들여다보면 참 흥미롭다. 어쩌면 그렇게 어느 하나의 사안에 대해 놀랄 만큼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는지 말이다. 그러나 의궤는 정보의 기록물에 그치지 않는다. 미적 감각도 뛰어나 마치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품을 연상시킨다. 정보를 활용하되 이를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던 선인들의 지혜와 멋스러움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최근에 이러한 의궤를 기초로 당대의 사회 문화를 재구성한 책들이 나오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서울대 한영우교수의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과 서울대 규장각의 신병주 연구원의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은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경축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화성에 다녀왔던 8일간의 기록 의궤를 재구성한 것이다. 기초가 된 의궤는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다. 여기엔 1㎞에 달하는 1700여명 행렬의 전모가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화성행차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은 물론 행사 비용, 매일 제공된 음식의 종류와 그릇 수, 음식 재료와 종류 등 빠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행차 첫날 정조 아침상은 팥물로 지은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소고기 돼지갈비 숭어 등으로 된 구이 한 그릇, 장 세 그릇이었는 것, 화성 행차에는 정부의 환곡 이자수입 10만냥 정도가 경비로 사용됐으며, 혜경궁 홍씨가 화성까지 타고 갈 가마를 만드는 데 2785냥이 들었다는 것 등등. 특히 화성행차의 1700여명 행렬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는 그야말로 일대 장관이다. 신연구원의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역시 흥미 만점이다.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를 토대로, 1759년 당시 66세의 신랑 영조와 15세의 신부 정순왕후 김씨의 혼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현해놓았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에서 흥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조선시대의 엄정한 기록문화다. 500년 동안 왕조실록을 작성한 나라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조선의 기록문화를 놓고 "한마디로 무섭다"고 몸서리치는 한교수의 외마디가 예사롭지않게 다가온다.이광표(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 언론노보 317호(2001.11.28)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