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지음, 김상태 편역, 『윤치호 일기』(역사비평사) - 일제말 대표적 친일파 윤치호의 영문일기 - 독립운동 무용론 주장한 근대지식인의 언어유희 얼마 전 일본 아키히토 천황이 "8세기 50대 칸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말해 화제를 불어 일으켰다. 그의 말엔 분명 '일본 천황가는 백제의 후손이고 따라서 일본과 한국의 민족의 뿌리는 동일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천황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당혹스러웠다. 천황의 발언의 의도가 불순해 보였기 때문이다. 좀더 극단적으로 몰고 가면 그것은 곧 양국은 동일민족이라는 말이고 그래서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는 정당했다는 일본 극우론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일본 천황의 그같은 발언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언어에 유혹되어선 곤란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천황 발언을 놓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다. 일제시대말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윤치호(1865∼1945)의 영문 일기를 풀어쓴 『윤치호 일기』(역사비평사)다. 천황의 발언과 윤치호의 기록. 그것의 겉으로 드러난 의미와 이면에 숨겨진 의미, 그 둘을 비교해보니 참 흥미롭기도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윤치호는 일본 미국 중국에 유학했던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다. 독립협회장 대한자강회장을 맡았던 개화자강운동의 기수이기도 했다. 또한 105인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돼 6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3·1운동이 시작되자 ‘독립운동 무용론’을 펼치고 중일전쟁 이후 친일파의 대부로 변해갔다. 그는 왜 친일파가 되었을까? 그의 행로를 추적하는 것은 한국 근대사 연구와 그대로 직결된다. 친일파 여부를 떠나 그가 식민지시대 지식과 명망, 재력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추적은 더욱 흥미롭다. 그러한 궁금증의 실마리가 그의 일기에 숨어 있다. 그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그것도 영어로. 이 책은 1916년부터 1943년까지 윤치호의 영문일기를 번역해 시대와 주제별로 소개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윤치호의 개인적인 일상은 물론 공인으로서의 활동, 일제 식민통치와 국내외 정세에 대한 견해와 전망, 다양한 독립운동에 대한 생각, 조선의 역사와 민족성, 지인(知人)들의 사상 행적에 대한 그의 인식 등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비록 친일파의 일기라 할지라도 구한말 식민지시대를 연구하는데 소중한 사료다. 친일파의 일기여서 더욱 소중하다. 여기에 이 책의 의미가 있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윤치호 일기에 관심을 갖고 우리말로 꼼꼼하게 옮겨 근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힌 번역자의 노력도 돋보인다. 이 일기에 따르면, 윤치호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가 3·1운동 직전 파리강화회의 등에서 독립을 위한 외교운동을 해달라는 주변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열강들이 약소국 조선의 독립에 신경을 쓰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치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가 독립운동 무용론을 펼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윤치호는 당시 그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었다. 똑똑했기 때문에 독립운동 무용론을 펼쳤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정히 평가하면 그의 말은 말의 유희였다. 그 말에 속아선 곤란하다. 일본 천황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그 말의 이면을 읽어내야 한다. 이광표(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언론노보 319호(2001.12.28)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