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과 함께 한 가족여행 퇴악볕이 따가운 작년 6∼7월, 까칠해진 얼굴로 회사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 소유개혁을 부르짖으며 철야농성에 돌입한 집행위원들을 보면서 이런 마음을 먹었었다. "임기내에 한 번은 즐거운 일을 마련해야겠다"고. 드디어 12월 말, 마지막 집행위 회의에서 논의 끝에 '가족과 함께 하는 기차여행'을 결정했다. 약속한 12월 30일 토요일, 삼삼오오 서울역 대합실에 모인 집행위원과 가족들의 표정을 보면서 속으로 '백번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홍성 일대를 관광하는, 하루동안의 짧은 여행이지만, 가족들의 얼굴에서는 설레임이 숨겨지지 않았다. 첫 대면에 소박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전 8시 35분, 기차는 예정시각에 1분의 오차도 없이 눈오는 서울역 역사를 빠져나갔다. 출발과 동시에 느껴진 차내의 술렁임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감동적으로 바라본 것은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이 아니라 노동조합 간부로서 겪었던 지난 1년이었을 게다. 초면의 서먹함은 역시 아이들로부터 걷어졌다. 또래끼리 모여 앉아 오랜 친구인양 떠들기 시작하니, 부인들도 눈인사부터 시작해 가벼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끼리끼리 모여 앉아 나누는 얘기가 궁금했지만, 듣지 않아도 알 법했다. 아마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가장들의 지난 1년에 대한 성토가 아니었을까. 동병상련이라고 서로 사뭇 위안을 받는 눈치다. 어느 누구든 한두 가지쯤 부인들에게 숨긴 일이 없을까. 행여 여인네들의 대화에 불쑥 튀어나올까 조바심을 내며 불안한 눈길을 보내는 집행위원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이들을 보면서 역시 옛말이 그르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부부는 살면서 닮게 마련"이라는 걸. 눈과 바람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첫 방문지는 눈 덮인 개심사. "이곳을 찾으면 마음이 열린다"는 건지, "마음을 열고 이곳을 찾으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마음은 이미 열려 있으니까. 어른 허리께까지 올라온 가림막이 있는 개심사의 재래식 해우소, 안면도 해변 등을 돌아보고 돌아오는 기차안은 갈 때보다 아이들 소리로 훨씬 시끄러웠다. 맥주 캔을 앞에 놓고 어두운 차창을 응시하며 작은 목소리로 부끄러운 듯 전하는 "수고했다"는 동지의 한마디에 지난 1년이 흐뭇해진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을 위해 언제까지고 가슴 속에 담겨 있을 동지들이다. 싸한 맥주 맛과 기막히게 어울렸던 찐계란도 두고 두고 잊기 어려울 것 같다.- 강성남(대한매일지부 전 위원장)/ 언론노보 320호(2002.1.1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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