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정부의 방송제도 개선 논의, 사회적 논의 기구로 확장해야 한다

- 방통위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추진반 연구 결과 발표에 부쳐

 

언론노동자들과 미디어운동단체들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미디어정책의 부재를 지적했다. 아울러 미디어 공공성 강화와 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의 구성도 제안했다.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를 구성해 자체 논의를 시작하며 ‘사회적 논의’를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가 지난 12일 정책컨퍼런스를 열어 그간의 논의 결과를 소개한데 이어 정부가 어제 방송제도개선 방안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주최한‘중장기 방송제도 개선 및 미래지향적 규제체계 개편 방안 세미나’는 방통위가 올 4월부터 운영한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의 연구 결과 초안을 발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정부가 중장기적인 미디어정책 및 제도 개선 방안 수립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초안이고 의견 수렴을 위한 자리라고 했지만 발표문이 미디어현장에 던진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세미나에서의 발표 내용만으로는 추진반에 결합한 전문가들의 고민과 논의의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긴 어려웠다. 다만 현업 언론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아쉬움과 함께 몇 가지 우려가 제기됐다.

 

우선 오늘 날 미디어가 처한 위기의 원인이 글로벌미디어기업의 영향력 확대와 기술 혁신 등 환경의 변화 탓도 크지만 이에 대처하는 정부 정책의 부재 또는 실패에도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와 성찰은 부족했다. 새로운 미래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우려의 목소리로는 공/민영을 중심으로 한 방송 체계 개편이 자칫 공공영역의 축소와 민간부문 규제 완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KBS와 EBS를 공영방송으로 특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자본이 주도하는 미디어환경 하에서 공영방송은 고립되거나 공론장의 역할이 축소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또 MBC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역사적 형성 과정이 있는데 고육지책처럼 보이는 PSB(공공서비스방송) 지위를 신설해 사업자에게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자칫 MBC의 공영정체성을 흔드는 등 공공영역 축소의 신호탄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민영/민간부문의 경우 경쟁극대화를 위해 사전규제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여 자본, 경제권력의 영향력 확대라는 문제도 제기된다. 지역성 구현 문제의 경우 취약한 토대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유지,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모색보다는 사업자간 합종연횡이나 겸영, 권역재편을 꺼내들어 지켜야할 ‘가치’보다는 시장의 논리가 앞서는 것으로 해석된다.

거칠게 도식화하자면 공공영역의 축소, 공적 책무와 규제를 최소화한 민간부문 활성화로 요약되는데, 그에 따른 경제권력의 집중이 불러올 민주적 공론장의 약화, 여론다양성의 토대 잠식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앞서 지적한 문제들은 기존 미디어의 유지, 언론노동자들의 생존 기반을 넘어서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실현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다.

 

지상파방송 등 기간미디어가 변화한 환경에 발 맞춰 경쟁력을 갖추고 혁신해야 하는 것은 맞다. 또 수평규제 체제로 전환하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경쟁력 강화와 혁신의 목표는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실현이어야 한다. 국가는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실현을 위해 지상파방송, 지역방송이라는 공공영역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사회적 지원, 진흥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정부 제도개선 추진반이 ‘방송의 공공성 강화와 건강한 미디어 토대 구축’을 목표로 삼아 진행하는 논의이기에 어제 공개된 내용만 놓고 평가를 내리긴 섣부른 감이 있다.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방송제도 개선 논의는 시급하고 매우 중요하다. 시민사회는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로, 정부는 제도개선추진반으로 중장기적인 미디어 정책 개혁 논의를 본격화했다. 이제 사회적 논의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방통위가 밝힌대로 21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할 내용들이라면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대한민국 방송․미디어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위해 오랜 기간 고민하고 활동해 온 언론미디어운동, 현업 언론인, 누구보다도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주체인 시민의 참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다시 한 번 미디어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의 조속한 설치, 논의의 시작을 촉구한다. (끝)

 

2019년 11월 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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