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글> 우리들의 참 스승, 송건호선생 가시는 길에 신사년 세밑, 모진 찬바람이 잦아들던 새벽 청암 송건호 선생이 영면했다. 전국의 2만 언론노동자들은 우리들의 스승이며, 민족의 지성인 선생을 피안으로 떠나보내면서 옷깃을 여미고 삼가 조의를 표한다. 선생은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의 한줄기 빛이었고, 오욕의 반세기를 몸소 헤쳐온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는 참 스승이었으며, 참 지성이었기에, 그가 떠난 빈자리는 크고도 넓다. 선생은 '현실의 길'이 아닌 '역사의 길'을 먼저 걸으시면서, 지금 우리들이 추구하고 나아가려 하는 지고지순한 가치를 실천했다. 그는 1975년 동아일보 기자 150여명이 군부독재의 칼날에 잘려 나갈 때 홀연히 편집국장 자리를 내던짐으로써 22년 제도권 언론인의 생활을 마감하고, 스스로 거친 들판에 섰다. 선생은 그 무렵,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롯해 왕성한 저술활동에 몰입하면서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각을 바로 잡았으며 민족의 지성과 청년을 일깨웠다. 곧바로 재야운동에 투신해 84년 해직 언론인을 규합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했으며, 월간 '말'을 창간, 빼앗긴 말의 뿌리를 세웠다. '말'이 폭로한 보도지침은 87년 6월항쟁의 불씨를 지폈다. 그 해, 세계언론사상 유례가 드문 국민주 형태의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했으며, 88년 초대 사장을 맡아 한국사회에 양심과 진보의 소리를 웅변했다. 선생은 강직했다. 그 혹독했던 군부독재 시절, 옳고 그름을 분명히 했다. 옳고 그름을 흐리며 살아온, 그리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동시대 '언론인'들이야말로 시비를 명확히 가리며 행동하고 실천했던 선생의 길이 얼마나 모질고 힘든 길이었는가 너무 잘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결국 선생은 신군부의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조국통일과 민주언론의 실현을 끝내 지켜보지 못한 채 마지막 10년을 병상에서 누워 계시다가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여전히 크다. 미소짓는 선생의 영정 앞에서, 지금 권력화하고, 사유화하며, 진실과 여론을 호도하는 저 족벌 언론을 개혁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투쟁의 대오를 간직할 것이며,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초발심으로 선생이 남기신 과제와 시대적 사명을 다할 것임을 엄숙히 다짐한다. 선생 가시는 길이 평안하시기를 다시 옷깃을 여미며 머리 숙여 애도한다. <끝>2001. 12. 21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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