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0일 방송예정이던 KBS <추적60분> '국방군사연구소는 왜 해체되었나' 편이 끝내 보도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은 국방군사연구소의 석연치 않은 해체 이유, 군인과 군무원으로 채워진 새 연구소의 설립 배경 등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양민학살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이유를 따져 묻고, 전임연구소장의 파행운영과 폭행을 고발하며, 국방부 내부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국방부와 국방부장관의 잘못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KBS 노조의 시사회에서 살펴 본 이 프로그램은 언론의 사명과 역할, 성역을 두지 않으려는 자세, 음지의 환부를 공론화 시키려는 제작진의 노고가 묻어나는 전형적 고발프로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KBS 사측은 돌연 17일 막바지 더빙작업을 중단시키며 불방을 단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두 차례 연기됐었으며, 민간인 학살문제를 다룬 <유리구슬>에 이은 두 번째 불방이다. 앞서 <추적60분> '매향리…' 편에 대한 국방부의 4억 손해배상 소송, "미군 폄하의도가 아니다"는 애매한 해명성 멘트와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방송외압 의혹을 넘어 방송외압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감지한다. 우리는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권력이 방송을 장악하고 좌우하려는 군사정권 시대의 폭압이 실존하며, KBS 사측이 그 권력의 노른자위와 내심 흔쾌히 야합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사태가 지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KBS 사측은 불방 이유로 '국익에 반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으나 보도의 기준이 '국익'인지, '사회정의'인지는 차치하고라도, 한 국가기관의 비위사실과 양민학살 연구분야의 지적이 국익에 반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국익에 반하지 않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그런 비판과 지적이야말로 국익에 합당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난 시대 권력의 주변에서 맴도는 탐관(貪官)의 무리들에 의해 진정한 국익이 호도·왜곡되어온 과정을 지켜 보아오지 않았는가. 지금 국익에 반한다는 논리는 우리가 꾸짖어 마지않는 일본식의 자기은폐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KBS 사측이 국익 논리를 내세워 떳떳치 못한 자리보전의 욕심을 채우려 하며, 그 한가운데 지난 한때 야인으로 언론과 언론인의 바른 목소리를 주창하던 박권상 사장이 앉아있음을 본다.
언론과 언론인의 바른 목소리는 더 이상 박사장의 몫이 아니며, KBS 노조와 언론노련, 시민단체의 책무임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절감한다.
우리는 △<추적60분> '국방군사연구소'편이 즉각 방송돼야하고, △편집·편성권의 자율이 보장돼야하며, △박사장이 불방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다. 그것이 스스로 이뤄지지 않을 때 우리는 전면투쟁을 천명한다.

2000. 8. 21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