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국민 대신 정권 안위 앞세운 경찰청 문건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국가애도기간’이라고 한다. 모든 논쟁과 추궁을 멈추고 이태원 참사 수습에 집중하여 희생자에 대한 예를 갖추자는 시간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청이 10월 31일자로 작성한 <정책 참고자료>가 그것이다.
그제 SBS 보도로 공개된 해당 문건에는 참사에 대한 일말의 공감은커녕 시민과 언론에 대한 감시와 대응 방안만이 가득했다.
경찰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기 직전까지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 주요 책임자들이 사과를 미뤘던 이유가 드러난 셈이다.
경찰청 문건에는 ‘정부 부담’, (시민단체의) ‘대정부 투쟁’, ‘정부 책임’이라는 표현으로 마치 아무런 잘못도 없는 윤석열 정부에 부당한 여론이 집중되고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정보 보고가 가득했다.
할 말을 잃게 만든 것은 이뿐이 아니다. “장례비·치료비·보상금 관련 갈등관리”가 ‘정부 부담 요인’이라는 보고는 이 참사 수습의 핵심을 보상금으로 전제해 희생자 유족과 부상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처신”을 두고 “단골 비난 소재”라고 칭한 것은 또 어떠한가.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다 살릴 수 있었던 일을 신고 묵살, 늑장 보고, 무대책으로 대형참사로 만든 공직자들의 책임과 언행을 지적하는 시민과 언론의 목소리를 부당한 비난으로 낙인찍고 있다. 국가의 부재를 다시 증명한 무능한 공권력은 “정부 규탄 논리를 모색”하는 진보단체, “대정부 투쟁에 맞대응” 할 보수단체로 시민을 양분하고,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친여와 친야로 가르며 상처 난 국민의 가슴을 후벼파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결국 이 문건은 경찰청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 전체가 생때같은 젊은 목숨들을 앗아간 참사에 진정한 책임도 느끼지 못 하고 있으며, 오직 악화된 민심 속에 국민이 아닌 정권의 안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참사 직후부터 20시간 동안의 언론보도를 모니터하여 ‘정부책임론’을 부각시키는 보도량을 점검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MBC <PD수첩> 등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의 심층보도 기획 실태까지 내부 정보로 보고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통제, 여론조작 시도의 망령이 부활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지경이다. 국가의 역할을 망각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정권이 자신들을 향한 시민의 분노가 언론의 선동 때문이라는 독재정권이나 가능했던 망상을 반복하고 있다.
경찰에 묻는다. 이 문건을 작성한 의도가 무엇인가? 누구의 지시로 이런 문건이 만들어졌는가? 희생자 유가족과 충격에 빠진 시민의 안전은 저버리고 오직 권력의 안위만을 지키려는 위법하고 반헌법적인 권력남용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에 묻는다. 정부의 경찰 지휘 통제를 강화한다며 일선 경찰과 시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한 행안부 경찰국 신설의 목적이 어처구니없는 국민감시와 언론통제, 여론조작을 위한 것인가.
이 문건은 내부 보고용이라는 핑계로 무마될 사건이 절대 아니다.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지금 어떤 집단사고에 빠져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이 문건의 작성 지시자, 목적, 최종 보고 대상까지 낱낱이 규명돼야 하며, 위법적 요소가 드러나면 응당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 대신 정권의 안위에 동원된 공권력의 후진적 작태 앞에 우리는 애도와 분노를 구분하지 않겠다.
이 참사를 수습할 자격이 없는 모든 고위 공직자는 시민 앞에 사과하고 즉시 사퇴하라.
애도와 추모는 침묵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한다. 당신들의 행동을 요구한다.
2022년 11월 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