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미국 방문 외교에 나선다고 하자 많은 이들이 걱정부터 쏟아냈다. 그래도 ‘바이든-날리면’으로 큰 경험을 했으니 그 정도 설화는 없도록 대비하지 않았겠느냐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국빈 방문 공식 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로 일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반성이 없더라도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우리 국민들의 생각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인터뷰 내용이 공개된 후 정치권은 물론 각계각층의 질타가 쏟아지고 보수언론까지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지적하자 슬그머니 ‘주어 없음’ 패를 꺼내 들었다. 대통령실이 주어가 빠진 판본을 공개하고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그를 근거로 외신 보도 오역이라는 의혹을 방송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25일 워싱턴포스트 해당 기자의 정면 반박으로 국민의힘의 의혹 제기가 여론 조작 시도였다는 것이 들통났다. 이번에도 ‘국익’을 위해 지엽적인 논쟁은 자제하자는 당부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둔 한국의 언론노동자들은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함을 느낀다. 구중궁궐을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대통령실을 옮기고 시작한 출근길 문답은 일방적인 통보로 중단됐다. 지난 4월 11일 미국의 도청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지만 “좋은 질문입니다”는 답변 외 제대로 된 답변을 듣기 어려웠다고 한다. 한국 언론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다가 외신 기자를 만나 국민 생각과 동떨어진 망언을 뱉어낸 대통령, 그리고 그것을 거짓으로 감싸려고 한 대통령실과 여당의 조작극은 윤석열 정권의 일방적인 언론관, 소통관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한국 언론에 답하기 싫으면 답하기 싫다고 말하라. 그래도 쓰는 것은 언론노동자들의 책무이다. 단 거짓만큼은 안 된다.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한 거짓 여론 조작극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국격과 국익 실추를 불러온다. 한 번은 실수로 기억되지만 반복되면 국민들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 여론 조작과 언론 핑계로 본인들의 실정을 덮으려는 후안무치한 행태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
2023년 4월 2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