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윤석열 정권과 여당이 자행하고 있는 작금의 언론 탄압과 장악 시도에 길을 연 것은 집권 시절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후견주의 철폐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미룬 민주당의 실책이었음을 거듭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언론 자유를 침해할 독소조항이 다수 포함된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는 여야 정권 교체 이후 윤석열 정권이 고스란히 물려받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날뛰는 명분이 되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연설을 통해 “전임 정부에서 민주당이 방송법을 완수하지 못했다. 반성한다”며 “반드시 방송법을 통과시켜 최소한의 언론 자유,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박광온 원내대표가 밝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이번 회기 내 방송법 처리 약속은 윤석열 정부의 반헌법적, 반민주적 언론탄압에 맞서 의회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다. 민주당은 언론자유 수호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책무를 당파적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정당임을 입증할 기회와 책임을 이번만큼은 결코 무산시키지 않아야 할 것이다.
비상식적 언론탄압 획책으로 국제적 비난에 직면한 집권 국민의힘은 스스로의 양심마저 저버리고 있다. 무차별적 언론통제 방안을 쏟아내고 있는 오늘의 국민의힘은 야당 시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을 통제·검열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법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어제의 국민의힘과 싸우고 있다. 희대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도 본격적으로 언론탄압・장악에 나서는 모양새다. 방통위는 어제 전체회의에서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며 ‘신속심의·구제제도’(패스트트랙) 활성화, 실효적 제재 도입, 포털 사업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 등으로 포장된 반헌법적 언론통제 방안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하나같이 대통령과 여당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든 표현물을 ‘허위’로 낙인찍고, 5년짜리 국가권력이 헌법가치인 언론표현의 자유를 난도질하겠다는 극단적 발상들로 이동관 한마디에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이 군사작전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외치며 언론 폐간과 제재를 받은 언론사의 재창간, 종사자의 기자활동 자체를 막는 ‘갈아타기' 방지 법안까지 추진한다고 한다. 대체 헌법과 법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 대책인지 의심할 지경이다. 우리 헌법은 제15조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자유’를 밤낮으로 외쳐대는 동안, 방통위는 헌법적 가치인 직업 선택의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입법까지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셈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도 방통위와 한통속이 되어 부화뇌동하고 있다. YTN 플러스 대표 재직 당시 사적이익을 위해 방송을 사유화하고, YTN 노조와 사내 정보를 극우 매체에 전달했던 류희림씨를 위원장으로 맞은 방심위는 독립성을 내던지고 방통위가 주도하는 ‘가짜뉴스 근절 TF’에 합류했다. 게다가 그 정의도 모호한 ‘가짜뉴스’에 대한 신고를 받아 방송뉴스에서 인터넷 이용자 개인의 표현물까지 ‘허위 여부’를 판단하여 삭제·차단하겠다고 한다. 언제부터 방심위가 정보통신망법과 심의규정을 초월하는 권력기관이 되었는가.
비판 보도를 탄압하기 위한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과, 검·경을 동원한 압수수색도 일상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뉴스타파와 jtbc에 이어 이번엔 YTN에 대해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군사독재 시절 보안사 군홧발 대신 검경의 구둣발이 언론사 뉴스룸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시절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 펼쳐지고 있다.
대통령실, 국민의힘, 방통위, 방심위, 검찰과 경찰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과시하고 있는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발상과 조치들이 바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공영방송 정치독립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공영방송 재원을 뒤흔들고 법원에 의해 거듭 제지를 당하면서도 불법적 이사진 교체를 강행해 윤석열 낙하산 사장을 기어이 투하하겠다는 이 정권의 폭력성은 공영방송이라는 공론장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지워버리고 그 빈자리를 정권이 인증하는 ‘진짜뉴스’, 윤석열 방송으로 채워 넣을 것이다.
마지막 정기국회의 문을 연 21대 국회에 강력히 요구한다. 무도한 언론탄압과 방송장악의 악습을 끊어 언론자유를 보장하라! 이를 위해 공영방송의 정치독립법을 반드시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라.
이번이 국민의힘에게도 마지막 기회다. 군사독재 시절부터 내면에 켜켜이 쌓인 언론탄압과 방송장악의 DNA를 스스로 지우고 방송독립법 처리에 협조하라. 그것만이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피할 유일한 탈출구다.
2023년 9월 1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