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21대 대선 중앙 정책공약집을 26일 발표했다. 미디어 개혁 항목의 첫 문장에 “언론노조에 의한 오염된 조직 구조와 보도 행태의 질적 변화 추구”라는 표현이 담겼다. 윤석열 정권이 파괴한 미디어 공공성을 어떻게 회복할지 깊이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공약집 첫머리부터 언론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오염’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판이나 비난이 아니다. 그것은 대화나 타협의 여지를 원천 차단한 채 상대를 철저히 닦아내고 척결해야 할 존재로 규정하는 폭력적 언어다. 상식적인 정치 세력이라면 현행 미디어 시스템의 어떤 점에 문제가 있는지 나름대로 진단하고, 이를 어떻게 개선할지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그런 고민조차 없이 다짜고짜 언론노조를 적대와 배제, 제거의 대상으로 지목했다.
국민의힘의 언론노조 혐오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윤석열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못된 짓 첨병”, “뜯어고치겠다”는 등의 거친 언사로 언론노조를 노골적으로 악마화했다. 급기야 자신의 탄핵 심판을 다루는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조차 언론노조를 겨냥해 전혀 사실이 아닌 허위 발언을 쏟아냈다.
윤석열의 왜곡된 시각은 국민의힘에 그대로 계승됐다. 대선 정국 초반부터 국민의힘 고위 인사들은 언론을 향한 비뚤어진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권성동은 ‘공정 보도’니 ‘균형 보도’니 하는 어울리지도 않는 말을 앞세우며 언론사에 “비상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그러더니 실제로 여성 기자의 손을 거세게 잡아 끄는 폭행까지 자행했다.
하기야, 국민의힘은 이명박·박근혜·윤석열 3대에 걸쳐 일관되게 언론 장악을 시도해온 세력이다. 그래도 자당이 배출한 두 명의 대통령이 연속으로 파면돼 정권을 잃었으면 최소한의 자기 반성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파면당한 윤석열의 왜곡된 노조관과 언론관을 대선 공약집에까지 뻔뻔스럽게 박아 넣은 걸 보니, 뉘우침은커녕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태도만 다시 확인할 뿐이다.
두 장짜리 국민의힘 공약집에는 이외에도 이율배반적이고 무책임한 내용이 즐비하다. 언론사와 언론노동자들이 단체협약과 편성규약을 통해 자율적으로 구축해온 ‘임명동의제’의 일방적 폐지, 방송사 재허가 조건에서 편성위원회 설치 의무화의 삭제, 대기업의 미디어 시장 지배력 강화를 노린 ‘민방 투자 제한 완화’ 등 미디어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훼손할 정책들이 줄줄이 포함돼 있다.
유체이탈의 진수를 보여주는 공약도 있다. 방송 내용 심의를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최소 심의”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윤석열이 내리꽂은 언론장악의 하수인, 류희림 체제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치적, 편파적인 억지 심의로 일관하며 이미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다. 이에 대한 일말의 사과나 반성도 없이 국민의힘이 이런 공약을 내놓는 것은 뻔뻔함 그 자체다.
오염된 것은 언론노조가 아니라 언론 장악의 망상에 사로잡힌 국민의힘이다. 언론을 탄압하고 내란에 동조한 정당이 누군가를 ‘오염됐다’고 지목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그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꼴이다. 국민의힘은 대선에 나설 자격조차 없다. 당신들은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반헌법 조직이다.
2025년 5월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