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현업단체, 5일 기자회견 개최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법 개정이 자칫 권력 감시 보도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언론현업단체들의 지적이 나왔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는 5일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 앞 광장에서 <언론중재법 개정, 속도전 반대한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언론보도로 인한 시민 피해 구제를 확대하는 목적의 언론중재법 개정에는 찬성하지만 권력 감시 보도의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 등 권력자를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인, 대기업 등 권력자가 비판적 언론사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안을 악용할 수 있어서다.
이호찬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중재법 개정에 찬성한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 구제를 더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적극 동의하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적극 논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인해 정치권력에 대한, 자본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가 결코 약화돼선 안 된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은 권력자가 아닌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한국 언론은 그렇지 않아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 방심위에 의한 보도 공정성 심의 등 여러 가지 억압적 수단 하에 놓여있다”며 “시민들의 피해 구제에는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이처럼 큰 틀에서의 논의 없이 언론중재법 개정만 논의한다면 언론인들은 이것을 언론자유 침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은 “민주당이 언론특위를 중심으로 언론중재법을 속도전 형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내용을 찬찬히 들여볼 법안 상세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거칠게 들여다보니 언론중재법이 아니라 언론 징벌법, 언론 억압법, 취재 봉쇄법으로 전유될 수 있는 사안이기에 중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도원 언론노조 민실위원장은 “언론탄압에 악용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주실 것”을 강조하며 “윤석열 대선후보 검증 보도, 천공과 건진법사의 국정개입 의혹 보도, 김건희 명품백 수수의혹 보도 등 당시엔 허위보도 취급을 받았지만 뒤늦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사안들이다. 징벌적 배상이 있었다면 이런 의혹보도는 크게 위축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현업단체들은 회견문을 통해 “모든 현업 종사자와 전문가들이 ‘무조건 반대‘도 아닌 ’사회적 숙의’를 요청하는 마당에 속도전을 고수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집권 여당은 사회적 숙의를 통해 시민피해구제를 확대하면서도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보호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8일부터 국회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 제외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에 나설 예정이다.(끝)
*기자회견 사진 : https://bit.ly/4p4f1Rj
아래는 발언 전문.
○ 이호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방송3법 개정을 위해서 시민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광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도 말씀드렸습니다. 언론의 정치적 독립 실현과 함께 저희 스스로 언론 내부를 돌아보고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극복하겠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언론노조는 언론중재법 개정에 찬성합니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 인한 시민들의 피해 구제를 더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적극 동의하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적극 논의할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인해 정치권력에 대한, 자본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가 결코 약화돼선 안 됩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은 권력자가 아닌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지난 2021년, 언론중재법 개정이 사회적 논란이 됐습니다. 언론자유가 위축될 것, 권력 감시가 약화될 것이란 우려에 법 개정은 중단됐습니다. 그때도 정치인과 공직자, 대기업 주요주주, 임원 등은 제외됐습니다. 공익침해행위에 대한 언론보도, 청탁금지법 관련 보도 등은 제외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오전 민주당 언론개혁 특위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이런 예외 조항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에 대한 허위조작정보도 존재하는 것 아니냐, 이에 대한 징벌적 손배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이미 현재의 제도로도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고, 이는 언론에 충분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사례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권력자들에게 실제 손해액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배액 배상을 해야 할 긴급하고 중대한 사유가 있습니까. 대기업 삼성, 현대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주어서 우리가 얻어낼 것이 무엇입니까. 그로 인해 약화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대한 감시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권력자들의 소송 남발 가능성에 대해서 민주당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중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거치게 하거나,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게 하는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게 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할 것인지도 의문이고, 조정이 불성립되는 경우가 지금도 허다한데, 권력자들의 과도한 손배 청구가 남발할 시 조정 불성립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권력자들의 남소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허위조작 보도를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허위조작 여부는 수년 뒤에 밝혀집니다. 아시는 것처럼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 탐사 보도 초기에 당사자들은 무조건 부인하며 허위조작이라 주장합니다. 그리고 거액의 소송을, 언론중재법이 개정되면 수십억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입니다. 손해배상 청구 시부터,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 언론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 감시는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외에도 입증책임 전환이나 배액 배상 기준, 정정보도 기한과 방식 등 머리를 맞대고 세심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습니다. 그 모든 조항들에 언론의 자유를 하나하나 침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추석 전 입법을 내세우며 밀어붙일 사안이 아닙니다.
거듭 촉구합니다. 속도전을 멈추십시오. 법안을 공개하고, 일정 기간을 정해서 집중적인 숙의 과정을 진행하십시오. 언론현업단체들은 적극 동참할 의사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은 권력자가 아닌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권력자를 제외하면 더욱더 폭넓은 시민 피해 구제를 논의할 수 있습니다. 시민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이라는, 민주당이 애초 내걸었던 법 개정 목표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
토론은 부족한데 일정은 뚜렷합니다. 각론마다 깊이 있고 다양한 의견 논의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각론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용을 알아야, 구체적인 법안이 있어야 각론을 얘기하는데 그럴 수 없어서 총론을 얘기하겠습니다. 한국 언론은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억압적 수단 하에 놓여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흔치 않습니다. 해외 선진국들 중에 있을까요?
국제기구에서 한국 언론자유를 평가할 때도 한국 언론은 명예훼손만 해당되면 진실을 보도하더라도 처벌 위기 놓인다고 매년 평가합니다. 이 제도를 누가 이용하나요? 개인적인 사례를 들겠습니다. 제가 MBC 국장 시절 바이든-날리면 보도로 명예훼손 고발 당해서 형사 고소도 당하고 형사 고발도 당하고 민사 소송도 당했습니다. 누가 이용합니까? 무혐의 벗는 데에 3년 걸렸습니다. 그래서 언론중재법은 중재법만 놓고 논의할 게 아니라 큰 틀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피해자 구제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피해자가 잘못된 보도로 구제받아야 할 손배액의 현실화는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더 큰 틀에서 표현의 자유와 시민 권리 구제 자유 보장이 충돌하는 게 아니라 결합할 수 있다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형법상 명예훼손죄 폐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논의 없이 언론중재법만 고친다? 언론인은 이것이 언론자유 억압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방송은 방심위로부터 공정성 심의를 받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국가행정기구가 보도 내용을 심의해 과징금을 물리고 관계자를 징계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법원도 방심위를 민간독립기구를 표방하나 사실상 국가행정기구라고 규정해왔습니다. 잘 아실 겁니다. 윤석열 정권 류희림 체제 방심위는 여러 이유로 방송 보도를 악의적, 허위, 공정성 침해라고 주장하며 법정제재를 가했습니다. 이걸 그대로 두고 어떻게 언론자유를 얘기합니까. 명예훼손을 걸었던 주된 주체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입니다. 공정성 심의로 방송사에 압박을 가하는 것도 정부여당, 정치권력입니다. 정치, 경제권력을 제외하자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민주당은 언론개혁, 사법개혁 속도전에 나서겠다는데 방송 공정성 심의 및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폐지를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민주당 내에 이 논의에 공감하는 의견이 있는 걸 압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꺼번에 논의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뭐가 어렵습니까? 추석 전까지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이 수십 년간 이어진 중요한 논의를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며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합리적 토론이 이뤄지는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께도 당부드립니다. 언론 위축 효과라고 하니까 더러 “오보를 내놓고 책임을 안지려 하냐, 잘 된 보도를 하면 되지 뭐가 위축되냐, 쫄지 마라”고 하시는데 쫄지 않습니다. 제가 MBC 보도국장 시절 온갖 민사소송, 형사고발 들어와도 쫄지 않고 보도했습니다. 다만 그거 하느라 하루 종일 법무팀 회의하고 부장들 모아서 법적 문제 없는지, 추가 소송 없는지 논의했습니다. 속보도 훨씬 조심했습니다. 당연히 조심해야 하지만 사법 대응을 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썼습니다. 결국 무혐의 받았지만 너무 많은 손실이 있었습니다. 후배들이 올리는 기획기사, 좋은 발제를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없었습니다. 더 좋은 뉴스를 만드려는 노력이 침해당했습니다. 억울합니다. 이게 언론자유 위축입니다. 언론자유는 언론사 기자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한 우리들의 활동, 시민들을 위한 적극적인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언론자유를 강조합니다.
○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
민주당이 언론특위를 중심으로 언론중재법을 속도전 형식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며 논의와 숙의도 없이 밀어붙입니다. 지난 1일 세미나 후 오늘 오전에 보도자료 뿌리고 오후에 설명회를 할 모양입니다. 채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추석 전까지 본회의 통과, 25일까지 본회의에 법안 통과시키겠다는 언설을 내뱉고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계와 시민단체 전문가와의 숙의는 없었습니다.
아주 잘못된 행보입니다. 내용을 찬찬히 들여볼 법안 상세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칠게 들여다보니 언론중재법이 아니라 언론 징벌법, 언론 억압법, 취재 봉쇄법으로 전유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막아야 하고 중지해야 합니다.
시민 피해 구제에 대해서 저희는 온전히 100% 동의합니다. 하지만 권력자, 정치권력, 대자본에 대한 감시 기능을 약화해서야 되겠습니까. 밀어붙이는 행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치인들이 본인들을 위해서 하는 일처리 접근법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12월 불법 비상계엄 이후, 그 어두운 터널을 시민사회와 함께 헤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9개월 지난 지금, 어쩌면 더 도약해야 하는 단계를 건너뛰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새 집권여당 민주당 시간이 아닙니다. 함께 어둠을 헤쳐온 국민의 시간입니다.
전체 유권자 중 3%도 안 되는 비중이 언론중재법 개정에 찬성 의견을 냈습니다. 97-98%는 더 급한 것이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언론특위와 새로운 민주당 지도부는 이 사안을 휘몰아치는 중입니다. 찬찬히 접근하십시오. 이후 어떤 저항이 있을지 모릅니다.
○ 김도원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장
전에도 밝혔지만 언론노조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입은 시민을 구제한다는 개정 취지에 동감합니다. 다만 언론탄압에 악용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 주실 것을 강조합니다.
내란 정권 때 언론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바이든 날리면' 보도가 표적이 돼 MBC는 아마도 억대 배상금을 물게 됐을 겁니다. 이건 견강부회가 아닙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허위 보도라면서 정정보도 판결을 내렸습니다.
윤석열 당선 뒤, 대통령 관저를 외교부장관 공관으로 바꾸는 과정에 김건희 여사가 개입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국정 관여를 일찍부터 경고한 보도입니다. 하지만 취재기자는 명예훼손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징벌적 배상 제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민사소송까지 추가해서 괴롭히지 않았을까요?
사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선후보 검증 보도, 천공과 건진법사의 국정개입 의혹 보도, 김건희 명품백 수수의혹 보도 등 당시엔 허위보도 취급을 받았지만 뒤늦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사안들입니다. 징벌적 배상이 있었다면 이런 의혹 보도는 크게 위축됐을 겁니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거대 기업도 큰 위협입니다. 쿠팡이 기자들을 포함한 채용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보도가 작년에 있었습니다. 쿠팡은 취재기자를 형사고소했습니다만, 악의적 보도로 매출에 타격을 입고 기업 이미지가 훼손됐다면서 징벌적 배상을 청구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쿠팡 연 매출이 40조 원이니까 피해액을 매출액의 0.1%로 잡아도 400억 원, 3을 곱하면 1200억 원입니다. 이걸 언론사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소송에서 이겨봐야 본전일 뿐입니다. 아니, 소송 대응에 허비하는 시간과 비용과 부담감을 감안하면 막대한 피해를 겪습니다. 다른 취재할 시간도 뺏깁니다. 소송 걱정 때문에 정당한 고발 보도도 주저하거나 접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피해는 시민이 입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조건 반대가 아닙니다. 악용을 막으면서 평범한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자는 겁니다. 속도전을 멈추고 진지하게, 활발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