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치 않은 해체 의혹 제기하며 국방부 잘못 통렬히 비판
국방군사연구소는 전쟁사, 군제사, 국방정책사 등 군사사(軍事史)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이다. 1964년 8월 대통령령에 의해 전사편찬위원회란 이름으로 출발한 국내 유일의 군사사(軍事史) 전문 연구기관인 국방군사연구소는 지금껏 한국전쟁사의 고전인 <한국전쟁사>(10권), <한민족전란사>(11권) 등을 발간해 군사사 분야에서는 독보적 위치를 구축해왔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는 군사연구소를 전격 해체하고, 군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구소(군사편찬연구소)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연구원 및 직원 28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국방부는 군사연구소 해체의 이유를 "국방연구소는 한국국방연구원과 업무성격이 다르고, 최근 불거진 노근리 사건과 같은 군 관련 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역군인과 군무원을 직원으로 하는 새로운 연구소 창설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국방군사연구소 해체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주장한다. 한 연구원은 "최근 사회적 요구에 밀려 노근리 등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국방부 차원의 조사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민간인 연구원들을 배제하고 현역과 군무원으로 구성되는 연구소를 신설해 국방부가 그어놓은 선에서 조사 연구하기 위해 연구소를 해체하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노근리 사건 조사 및 처리와 관련해 국방부의 연구소 폐쇄 방침은 다분히 의혹을 살 만하다.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 이사회가 지난 7월 4일 국방군사연구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뒤 지난 8월 3일부터 3일 동안 노근리 사건에 대한 한·미합동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국방부 노근리 조사반에서 연구해 온 양영조, 서용선 박사 등 민간인 노근리 조사 전문가들은 이 회의에 단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같은 의혹은 추적60분 취재진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 전 국방군사연구소장은 취재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 한국전쟁 당시 전북 지역에서 군에 의해 저질러진 양민학살 사건 등 정부가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언론에 의해 여론화되지 않은 군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연구소가 앞서서 조사를 하거나 피해자를 만나지도 말며, 조사를 하더라도 군입장에서 할 것을 지시했다고 털어놓았다.
민간인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원들은 이같은 지시는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여기에다 군 예비역 장성 출신의 연구소장의 폭행과 무리한 운영의 시정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작성하는 등 연구원들의 집단행동이 국방부의 괘씸죄를 샀다는 것이다. 연구원을 군법의 지배를 받는 현역 군인과 군무원으로 구성해 감히 '항명'을 꿈꾸지도 못하게 통제하겠다는것이 국방부의 의도라는 주장이다.
또한 전문성은 떨어지더라도 군인력을 활용하겠다는 국방부의 집단이기주의 역시 민간인 연구인력으로 구성된 '국방군사연구소'의 해체와 군인과 군무원으로 구성된 '군사편찬연구소'의 신설에 한몫을 했다는 것이다.
/ 언론노보 288호(2000. 8.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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