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화두는 단연 경제위기다. 포드사의 대우차 인수 포기,유가 30달러 돌파,주가 폭락,계속되는 여야 대치 등의 악재를 종합할 때 현상황을 경제위기로 규정할만 하다. IMF를 겪었던 우리 국민들은 경제문제만큼은 민감할 수 밖에 없고,97년 말 한 재경부 기자가 IMF를 사전에 경고하지 못한 책임을 솔직히 고백할 만큼 언론도 경제에 있어서는 원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음은 사실이다.때문에 최근의 언론은 많은 지면을 할애,연일 빨간불을 켜대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 만큼이나 반론도 있어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겠다. 지적코자 하는 것은 경제위기이든 아니든 언론은 그에 따른 심층적인 분석과 해설,전망기사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이다.그러나 대다수 신문들은 경제 위기를 수박겉핥기식으로 접근하거나 현상만을 부각하는데 급급했다.심지어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흥미위주로 접근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를 인용,18일자 1면 머리에 ‘유가 35달러까지 오르면 내년 경상수지 21억불 적자로’라는 기사를 실었다.이틀뒤인 20일자에도 ‘유가 35불땐 내년 50억불 적자’라는 제목으로 재경부 현안보고를 1면 머리로 올렸다. 물론 고유가가 지속되면 경제정책을 전면 재수정해야하고 경제불안이 가중된다는 점은 분명하다.하지만 두 기사는 분석기관과 수치만 다른 뿐 별반 차이가 없어 두번씩이나 1면 머리를 장식했어야 했는지 궁금하다.또한 20일자 1면 기사에 물린 해설기사도 ‘고유가가 지속될 수 있으나 허리띠를 졸라매자’내지는 ‘정부는 장기대책을 세워야 한다’ 등의 촉구성 수준이었다.고유가에 따른 구체적인 대안은 부족했다.오히려 이 두기사로 국민들의 불안감만 확대 재생산했다는 비난을 받을만 했다. 조선일보는 또 주가가 50포인트나 빠진 19일자 45면에는 ‘22조7,000억원 하룻새 날아가’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실현되지 않은 손실을 굳이 제목으로 달아 안그래도 투기장화돼 있는 우리 주식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다른 신문들도 마찬가지다.동아일보 ‘IMF악몽 다시 살아나나’(19일자 3면),한국일보 ‘제2 IMF 막아라’(20일자 1면),대한매일 ‘1배럴 35달러 총체적 위기’(18일자 5면),경향신문 ‘제2 환란에 대비하라’(21일자 7면 시론),세계일보 ‘산업계에 줄도산 공포’(20일자 1면),문화일보 ‘제2위기 우려가 현실로’(19일자 1면) 등이 대표적이다.‘연중최저’ 또는 ‘연중최고’,‘검은 ○요일’ 등의 표현으로는 정부와 독자를 긴장시킬 수 없다는 태도다. 다만 5회에 걸쳐 현 경제위기의 실상과 대안 등을 시리즈로 다룬 중앙일보와 비슷한 시리즈를 소화한 국민일보가 눈에 띄었다.한겨레신문도 비교적 냉정하고 차분하게 접근했다. 그러다 주가가 31포인트 반등한 25일자에 와서는 ‘웃음 돌아온 증시’‘금융주 상한가 속출’‘금융구조조정 호재’ 등의 제목으로 돌변,냄비식 보도태도를 여실히 보여줬다.정말로 곪을 대로 곪은 한국 경제가 며칠새 완쾌됐다는 것인지 헷갈린다.모든 현상을 단 하룻만에 단정하는 한국 언론 특유의 자신감이 오히려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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